정부는 9일 국제금융시장에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을 통해 40억달러를 새로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따라 우리나라의 가용외환보유고는 이달말 300억달러를 웃돌아 IMF와 합의한 상반기 목표치를 두달이상 앞당겨 달성하고 외환수급 사정도 거의 안정권에 들게 됐다.지난주 일본의 신용등급 하락과 국내외 금융시장의 연쇄동요를 감안할 때 외평채를 계획보다 10억달러나 늘려 소화해 낸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뉴욕 타임스는 외평채 발행의 성공은 국제투자가들이 한국 경제의 재기를 신뢰하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리로선 최악의 상태를 벗어난 것일 뿐 기뻐할 일이 못 된다.
외평채 발행조건을 따져보면 한심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금리는 TB(미 재무부채권) 금리에 3.453.55%포인트를 더한 것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한국과 신용등급이 같은 필리핀은 지난주 10년만기 국채를 가산금리 3.375%포인트에 발행했고 멕시코의 채권도 가산금리 2.88%포인트에 발행되고 있다.
어느정도 예상한 것이지만 한국정부의 신용도가 필리핀·멕시코보다 더 나쁜 현실을 수용할 처지가 된 것은 충격적이다. 골드만삭스등 외평채 주간사들은 거래중개료로 1,750만달러(약 245억원)를 챙겼다. IMF사태이후 우리나라는 지난 1월초 뉴욕 단기외채연장협상에 이어 또한번 국제금융시장의 「봉」이 된 셈이다. 정부발행 채권이 정크본드(고위험채권) 상태의 고금리를 물었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한국정부가 재벌과 금융의 부실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때마침 우리나라의 개혁진행 상황에 대한 국제기구의 중간점검이 일제히 시작됐다. 세계은행(IBRD)은 10일부터 차관도입 조건 이행점검등 한국경제에 대한 중간검토작업에 착수했고, IMF는 15일 분기별 협의단을 파견하여 금융개혁등 구조조정 추진과 구제금융협약 이행여부를 점검한다. 또 17일에는 IMF가 별도의 국제자본시장 조사단을 파견, 외환·자본시장 동향과 은행·종금사 경영 정상화 방안 등을 점검할 계획이다.
재벌개혁과 금융개혁은 결국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길이다. 5년만기 채권 100억달러를 발행할때 금리를 0.5%포인트만 낮춰도 2억5,000만달러(약 3,500억원)의 이자를 줄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총외채(기업 현지금융 포함)는 2,500억달러 안팎으로 추산된다. 재벌·금융개혁과 그에 따른 국제신인도 회복은 국민 각자의 주머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시급한 과제이므로 더 미루지 말아야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