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우정있는 비판’(金聖佑 에세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우정있는 비판’(金聖佑 에세이)

입력
1998.04.11 00:00
0 0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6일 신문의 날 기념리셉션의 격려사에서 신문인들에게 「비판없는 찬양보다는 우정있는 비판」을 당부했다. 당연한 말인것 같지만 이것은 새 정부의 언론에 대한 입장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김대통령은 이날 『나도 개인적으로는 신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당하기도 해 때로는 속으로 화도 나고 어떻게 해볼까 생각해 보기도 했으나 언론이 있는 덕택으로 오늘이 있다』고 스스로 말했듯이 신문의 찬양과 비판을 번갈아 받으며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 정치인으로서의 영욕의 역정은 신문과의 애증의 역정이었다.

김대통령의 「비판없는 찬양」은 물론 일반적인 해바라기성 언론을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언론들의 자세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 독재정권시절의 언론들은 비판없는 찬양 일변도 였다. 그 희생자의 하나가 DJ다. 언론통제가 절정에 달했던 5공때 김대중이란 이름은 신문지상에서 한 동안 실종해 있었다. 미국에서 한국기자들과의 회견을 요청해도 정부의 만나주지 말라는 지시 한마디에 기자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김대통령은 정부에 대한 비판없는 찬양의 폐해를 누구보다도 실감한 사람이다.

이제 김대통령은 정부의 입장으로 바뀌었다. 칭찬받고 싶지 않은 사람 없고 찬양받고 싶지 않은 정부 없다. 어느 정부나 신문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 속성이다. 신문에 의지하지 않고는 통치할 수 없고 신문에 의존해서는 통치할 수 없는 것이 모든 정부의 고민이다.

김대통령은 신문의 날 리셉션에서 『토머스 제퍼슨이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할 것인가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인가에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했듯이 나도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라는 말도 했다.

제퍼슨은 신문이 시민을 계몽하여 합리적인 사회적 존재로 개선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시민은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있고 신문은 그 책임을 다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계몽하는 수단이므로 정부로서 중요한 기관이라는 생각이었다. 김대통령이 인용한 유명한 말은 1787년 제퍼슨이 프랑스주재 공사로 있을때 에드워드 캐링턴에게 보낸 편지속에 나온다.

『정부의 기초는 인민의 의견이므로 정부의 첫째 목적은 그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야 한다. 따라서 신문없는 정부냐 정부 없는 신문이냐의 어느 쪽을 택해야 한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택하겠다.』

제퍼슨의 이 말은 너무나 널리 알려진 대신 그의 이런 신문관에 대한 후일담은 과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801년 대통령에 취임하자 자신이 신문의 공격을 받게 되면서 신문의 자유에 대한 이상주의적 주장을 수정하게 된다. 1802년에 벌써 신문은 「허위와 중상과 무례」로 가득차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중임의 임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던 1807년에는 신문기자를 지망하는 소년 존 노벨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신문에 쓰인 것은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 신문을 읽지 않는 쪽이 신문을 읽는 쪽보다 좋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허위와 오류로 가득찬 사람보다 진리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의 김대중 대통령도 취임초의 「정부없는 신문」을 택한 신문관이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걱정된다.

우리나라 신문은 비판없는 찬양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다. 김영삼정부의 초기만해도 그랬다. 그 반동으로 비판한다는 것이 우르르 「우정없는 비판」일변도로 쏠린다. 김영삼정부의 말기가 그랬다. 사실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도 취임초의 밀월기간이라고는 하지만 비판없는 찬양의 징후가 도처에 보인다. 이런 투라면 정권의 말기에 가서는 또 김영삼정권 말기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 김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앞으로 집권 기간동안 지금까지의 야당시절에는 비할수 없을 정도로 더욱 신문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당하기도 해 속으로 더 큰 화가 날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정부와 신문의 영원한 숙명이다. 그러는 사이 비판을 기대하는 김대통령의 대언론자세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신문도 김대통령의 당부대로 마땅히 우정있는 비판의 시대를 열어가야 하겠지만 김대통령도 취임초의 각오대로 우정 있는 비판을 끝까지 우정으로 수용할 자세를 지켜가야 할 것이다.<본사 논설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