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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경기부양’ 유혹인가/류석기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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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경기부양’ 유혹인가/류석기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8.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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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들어 우리 경제는 두차례 경기부양을 시도했다. 90년 「4·4」경제활성화대책과 93년 신경제 100일계획이 그것이다. 이 두번의 부양책은 성장률을 높이는 데는 분명히 기여했으나 국제수지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는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했다.93년 김영삼정권이 출범하면서 박재윤(朴在潤) 경제수석(당시)은 『경제가 너무 나빠 개혁을 하기 어렵다』며 금리인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신경제 100일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신경제 100일계획에 대해 고개를 흔들었다. 90년 4·4조치의 후유증으로 생긴 국제수지 악화를 해소하기 위해 2년가까이 경제안정 노력을 벌인 끝에 겨우 자생력을 되찾은 시점인데, 여기서 경기부양을 시도하면 거품만 키울 뿐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지표상 형편없는 경제를 넘겨받은 새 정부가 경기부양을 시도해 경제침체의 책임을 떠안는 것은 스스로 공배를 메우는 자충수(自充手)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신념에 불타던 당시 경제팀은 경기부양을 관철시켰고 94·95년 각각 9% 안팎의 고성장을 실현했다. 그 대신 국제수지 적자가 해마다 2배씩 늘어나 96년 무려 237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국제수지의 급격한 악화는 외채증가로 이어져 우리나라를 외환위기로 몰고간 결정적 요인이 된다.

경기부양이 당초 의도와 달리 「반짝 회복」에 이은 수지 악화로 귀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80년대말 이후 우리 경제가 고임금 고지가 고금리등 고비용의 족쇄에 얽매여 이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구조조정없이 경기부양으로 양(量)적 팽창만 시도해봤자 약효가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짐을 무리하게 실은 자동차는 아무리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배기가스만 더 쏟는 것과 같은 이치다.

최근 건설교통부는 건축경기를 되살리기위해 토지·주택정책에 대대적인 손질을 하고 있다. 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3조원을 투자해 실업자를 줄이자는 주장도 제기한다. 그러나 지금같은 고금리 상황에서 규제를 푼다고 부동산경기가 살아나기는 쉽지않다. 금리가 높다는 것은 현금의 가치가 부동산등 실물자산보다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의미다. 은행에 현금을 넣으면 이자가 배이상 늘어나므로, 있는 땅이나 집까지 팔아 현금을 갖고싶은 시기가 아닌가.

SOC투자를 늘려 실업자를 구제하자는 주장도 초점을 벗어난다는 지적이 많다. 갑자기 닥친 외채상환 요구를 못 견뎌 국가경제가 IMF의 「법정관리」를 받고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대기업과 금융기관들은 껍데기만 남은 양상이어서 연말까지 은행권의 부실채권 규모가 100조를 웃돌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루빨리 기업과 금융의 부실요인을 도려내 새 살이 돋게 해야 경제의 활력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국면이다. 지금 경기부양을 시도하면 몇몇 건설업체는 일감을 더 얻을 지 모르나 전체 경제가 앓고 있는 병의 뿌리를 제거하는 데 필요한 돈은 그만큼 줄어든다. 대기업과 은행이 생사의 기로에 섰는데 건설업계가 잠시 숨을 연장한들 전체 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엔진이 고장났는데 바퀴에 바람만 넣는다고 차가 달릴 리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경기부양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당장 죽겠는데 뭐든 좀 도와달라는 재계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근본적인 구조조정없이는 어떤 부양책도 한순간의 진통제일 뿐이라는 사실을 실패한 두번의 경기부양 시도가 잘 말해준다. 겨울이 춥지않은 해는 여름도 덥지않다. 푹한 겨울과 서늘한 여름이 이어지면 가을이 와도 곡식은 여물지 않는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당장 고통스럽다고 담금질을 피하다간 수확의 기쁨을 영영 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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