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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생활수기 마감 8일 앞으로

입력
1998.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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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생활수기 공모 마감이 8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로 16회를 맞는 여성생활수기 공모 수상작에는 그동안 우리나라 여성들이 걸어온 길이 그대로 담겨 있다. 척추마비가 된 외아들을 돌보느라 쉰살에 공장에 취직했던 고희의 이계출 할머니(83년 1회 최우수작)를 비롯해 정신이상 남편을 돌보며 20년간 청소일을 한 나심(92년)씨, 남편의 도박과 지긋지긋한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이옥순(97년)씨처럼 여성이기에 가정의 고난을 떠맡아야 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은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취업현장에서의 여성 차별을 고발한 강신혜(88년)씨, 해직교사 가족의 아픔을 그린 김혜심(93년)씨처럼 사회와 여성의 삶은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준 여성도 많았다. 또 뉴질랜드인 펜팔친구와 사귄 이야기를 쓴 이원숙(96년)씨나 중년이 되어가는 여성의 내면심리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묘사한 정성희(94년)씨처럼 여성만의 섬세한 감성을 묘사한 이야기도 많았다. 이들 중에서 지난 해 우수상을 받은 박진남(36)씨의 요즘 생활을 소개한다.◎지난해 우수상 ‘식당아르바이트’ 박진남 주부/“당선후 삶이 더욱 당당”

김밥 광주리를 이고 매일 새벽 통학 기차를 타던 어머니가 있었다. 김밥 행상으로 딸을 대학 졸업까지 시킨 보람이 헛되게 어머니는 기차에서 넘어져 돌아가셨다. 결혼하고 첫애 낳느라 허둥지둥 살았던 딸은 그렇게 어머니를 보낸 회한에 괴로웠다. 아기가 『엄마』라는 말을 배울 정도로 컸을 때 어머니처럼 「새벽 첫차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나온 고학력자면서도 식당종업원으로 아르바이트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을 키우기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었던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1시간에 3,000원을 받는 아르바이트는 쉽지 않았다. 점심 1시간동안 몰려오는 300명의 손님 뒤치닥거리를 하다보면 눈이 팽팽 돌아갔다. 1주일 후 받은 7만 5,000원. 『부끄럽지 않았다. 김밥 행상으로 나를 키운 엄마 얼굴이 내게 겹쳐졌다』

지난해 15회 여성생활수기 공모에서 「내 인생의 길목에서」로 우수상을 수상한 박진남(36·서울 동대문구 제기2동)씨는 『수기 당선이후 라디오 케이블TV에 출연하는 유명세를 탔다』며 『남에게 말하기엔 쑥스러운 개인사를 알려 계면쩍었지만 수상 이후 인생에 더 당당해졌다』고 말한다. 박씨는 『별로 극적이지 않은 내 이야기가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전문대졸 고학력 주부이면서도 식당 종업원이 된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당당한 노동으로 받아들이는 「떳떳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며 『솔직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은 나나 남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한다.

박씨는 그동안 아르바이트도 바꿨다. 당선 당시 임신 7개월째였던 박씨는 둘째 아기를 출산하느라 수기 소재였던 덮밥집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고 이번 달부터 아기 돌보기를 시작했다. 이웃집 맞벌이주부의 14개월된 아기를 봐주는데 『직장 다니는 이웃의 어려움도 덜어주면서 20만원의 수고비를 생활비에 보탤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한다. 남편 한창우(36)씨가 운영하는 비디오판매점은 IMF 이후 더 잘 안돼 박씨를 안타깝게 하지만 『남들도 다 어려운데다 우린 아직 젊으니까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당선소식을 듣고 『돈 못 벌어다주는 내 이야기를 써서 망신을 시켰으니 수상금 절반은 내 차지』라고 농담을 했던 남편은 소설가지망생인 아내의 꿈을 알고 있어 『형편만 되면 글을 쓰라』고 북돋아준다. 박씨는 8개월된 둘째를 돌보느라 본격적인 습작은 못하지만 일기는 매일 빼놓지 않고 쓴다.

박씨는 『전업주부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이 글쓰기』라며 『IMF를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도 이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노향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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