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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官治서 벗어나라(國難을 넘자: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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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官治서 벗어나라(國難을 넘자:17)

입력
1998.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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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규제…과보호… 늘 ‘어린자식’ 취급/풀건 풀고 홀로서게 정부선 엄정 감독을문민정부 5년 동안 은행장들은 골프를 치지 않았다. 임원들도 골프장에 한번 나가려면 온갖 눈치를 다 봐야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골프금지령은 공무원들에게 떨어졌는데 민간신분인 은행의 경영자가 왜 공무원보다도 철저하게 골프를 「자제」한 것일까.

시중은행 최고위직 S씨의 설명이다. 『대통령이 골프를 안치고 재무장관과 은행감독원장이 안치는데 어느 행장이 눈치없이 필드에 나가겠는가. 누구도 골프금지를 내놓고 지시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마음놓고 골프를 친 행장이 있다면 과연 온전히 임기를 마쳤을런지…』

중요한 것은 골프금지가 옳으냐 그르냐가 아니다. 「정부시책」이란 이유로 모든 은행장들이 거의 한날 한시에 중요한 비즈니스 수단이 될 수도 있는 운동(모재벌그룹은 당시 직원들에게 사업상 골프를 강권하기까지 했다)을 포기했다. 국내 금융계에서만 볼 수 있는 한편의 희극이었다. 늘 정부의 눈치를 봐야하고, 시키지 않더라도 알아서 하고, 그렇다고 너무 튀어도 안되는, 타성에 찌든 핏기없는 얼굴이야말로 오늘 우리 금융의 자화상이다.

경제의 혈맥인 금융은 지금 철저히 파괴되어 있다. 신선한 혈액을 공급받지 못한 육체처럼 금융이 망가진 경제가 튼튼할 리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을 경제관리인으로 불러오게 된 것도 금융이 바로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경영연구원(IMD)의 세계 경쟁력순위 조사에서 우리나라 금융의 좌표는 46개국중 43위. 한국의 종합경쟁력이 32위인 점을 감안하면 금융은 국내에서도 가장 뒤떨어진 분야인 셈이다.

금융 황폐화의 책임은 아무래도 관치금융, 즉 정부에 있다. 과잉규제 만큼의 과보호가 금융을 홀로 설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은행임원 L씨는 『관치금융은 정부가 금융을 「어린 자식」 취급하는 잘못된 애정이다. 혼자 결정(자율)하지 말고 부모(정부)가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발상(규제)이었다』

지난해말 종금사 단기외채가 환란 원인으로 지적되자 재경원의 한 당국자는 『규제를 너무 풀어 단기차입을 자율화한 탓에 이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규제시대에 대한 향수인가. 오히려 강화해야할 감독까지 규제와 함께 풀어놓고서 화살을 엉뚱하게 자율탓으로 돌린 것이다.

비슷한 시기 IMF가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산정에 까다로운 국제기준(충당금 100%적립) 적용을 요구하자 정부는 한사코 느슨한 국내기준(충당금 일부적립)을 고집했다. 국내은행의 부실은 외국이 더 잘 알고 장부기준이 느슨해진다고 부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대외신인도 보호」 논리를 내세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 것이다.

금융기관을 규제할 이유도, 보호할 까닭도 없다. 규제는 풀고 보호막은 걷고 그 자리를 엄정한 감독이 대신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치금융의 철폐는 제도개혁만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의식과 관행을 깨야만 한다. 『정부는 연초 은행장들에게 직접 지점을 방문해 기업대출을 독려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행장의 지점방문실적을 매일 보고하고 있다. 심지어 해외출장을 다녀오면 빠진 일수를 맞추려고 하루에 여러 지점을 돌아다니는 강행군을 해야 한다』는 한 은행임원의 하소연에서 은행의 현주소를 읽게 된다.<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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