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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작하는 詩作 영원히 ‘젊은 황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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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작하는 詩作 영원히 ‘젊은 황동규’

입력
1998.04.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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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40년 어느새 회갑/항상 딴 황동규가 되려했던 이 시대의 방랑시인/‘어떤 개인날’서 ‘외계인’까지/한데묶은 시전집 2권 펴내『이제는 새벽 범종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목어(木魚)는 물고기들 잠들라고 두드리고, 늦은 저녁 범종은 삼라만상을 편히 재우려는 소리라면 새벽 범종은 「깨어나라」는 소리이지요』

황동규(60·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시인으로서 늘 신생하고 싶은 욕망을 새벽 범종소리에 비유했다. 9일로 회갑을 맞는 그가 첫 시집 「어떤 개인 날」부터 열번째 시집 「외계인」까지를 「황동규 시전집」(전2권·문학과지성사 발행)으로 묶어냈다. 58년 「즐거운 편지」로 미당 서정주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것으로부터 치면 40년만이다. 그동안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세계를 추구해왔다. 시전집과 함께 나온 「황동규 깊이 읽기」에 쓴 자전적 글에서도 그는 자신의 욕망을 『딴 황동규가 되려다 죽고 싶다』는 말로 표현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기성(旣成)에 대한 비판과 회의야말로 그의 시적 동력이었던 셈이다.

그 비판의 궤적은 어떤 것일까. 영화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의 히트로 새삼 요즘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즐거운 편지」를 보자.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이 시는 원래 황씨가 고3때 1년 연상의 동네여학생을 짝사랑하다 쓴 작품이다. 당시까지 한국시의 큰 흐름을 이루던 만해, 소월, 미당류의 한(恨) 섞인 사랑노래를 그는 이 한편으로 뛰어넘었다. 「사랑이 그칠 때 다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은 마냥 참고 기다리는 한의 사랑을 비판하는 적극적 정한의 자세다.

그는 유신시대에는 지성과 감성을 절묘하게 교직한 시어로 사회비판에 나아갔다. 「몸 한구석에 감출 수 없는 고민을 지니고/병장 이하의 계급으로 돌아다녀보라/…/到處鐵條網/皆有檢問所/그건 난해한 사랑이다/난해한 사랑이다」(「태펑가」), 「아아 병든 말(言)이다/발바닥이 식었다/단순한 남자가 되려고 결심한다」(「계엄령 속의 눈」). 죽음과 정면으로 맞선 80년대 「풍장(風葬)」연작 이후 그는 또 다시 변화한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섭섭하지 않게/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손목에 달아놓고/아주 춥지는 않게」(「풍장1」).

가벼운 여행이라도 떠나는 어조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황씨의 여행벽은 유명하다. 『후배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그들의 젊음을 몰래 빼앗아 갖지요』라는 것이 그의 여행예찬이다. 최근에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대에서 6개월간 연수하고 돌아왔다. 그 곳에서 전집출간을 위해 40년간 쓴 시를 정리하면서 『단 한 자도 고칠 수 없는 시들을 만났을 때는 그 틈입할 수 없는 과거가 너무 안쓰러웠다』고 고백했다.

『논리화해야 하는 대학교수라는 직업과, 보여줘야 하는 예술가로서의 시인이라는 삶을 양립하기가 힘들었다』고 말하지만 그는 양쪽에서 성취를 해냈다. 그는 『요즘 한국문학은 소설이든 시든 내면은 없고 외면만 있는 것같다』며 『소설가는 소설을 살아야 하고 시인은 시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재미나는 감정 토로나 아름다운 풍경 묘사나 재치있는 필법만으로 시가 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는 인간을 조금씩이나마 변화시키려는 힘을 가진 시가 우리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지요』<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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