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유배지를 탈출」→「코르시카출신의 늑대, 칸에 상륙」→「맹호, 가프에 나타나다」→「전제황제, 리용에 진입」→「보나파르트는 북방으로 진격중」→「나폴레옹, 내일 파리로」→「황제, 퐁텐블로(파리근교 소읍)에」→「황제폐하, 어제밤 취일리궁전에 도착」. 1815년 2월, 엘바섬에 유배돼 있던 나폴레옹이 섬을 탈출, 파리로 귀환하기까지 시시각각 이를 보도한 파리의 한 신문 제목들이다.나폴레옹의 일거수 일투족을 시간대별로 정리하고 있으나 시류에 민감한 신문의 모습이 너무 낯 간지럽다. 나폴레옹이 파리로 접근함에 따라, 또 권력자로 롤백할 가능성에 따라 「악마」에서 「황제폐하」로 널뛰기하고 있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춤을 추듯 하는 「카멜레온 언론」의 정수(精髓)를 보는 듯하다.
나폴레옹이 무력이나 권위를 내세워 강제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신문(언론)이 스스로의 동물적 후각기능으로 상황변화를 알아채고 「알아서 기었을」따름이다. 「눈치 저널리즘」의 극치다. 이와 반대되는 현상도 있다. 집권동안에는 침이 마르도록 아첨하던 언론이 권력놓기가 무섭게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는다. 마치 퇴장권력을 격하시켜야만이 새권력이 자리잡을 것처럼 말이다.
4월7일은 「신문의 날」이다. 근대적 일간신문이 등장한지 올해로 100주년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신문의 날」을 맞아 『언론의 비판없는 찬양보다는 우정있는 비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의 코멘트가 아닐 수 없다. 권력의 부침따라 표변하는 언론의 생리를 질타한 것일까. 아니면 선거전때 「노골적인 줄서기」로 자신을 괴롭혔던 일부 언론의 낯뜨거운 변신을 지적한 것일까.
더이상 「아첨꾼(lackey)저널리즘」이란 비아냥은 듣지 않도록 하자. 「신문의 날」아침 스스로에게 한 다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