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분은 암세포에 영양공급,혈중 0.3㎎넘으면 위험/간염백신·정기검진이 간암발생 예방 최선책미국 필라델피아 제퍼슨대학병원의 한혜원(韓惠媛·62) 박사는 아시아계 간질환자에게 희망적인 결과를 내놓고 있다. 서울대의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의대에서 종양학을 연구한 그는 지금까지 2만여명의 동포에게 혈액검사를 하는등 교민들의 간염퇴치운동에 앞장서 왔다. 한박사는 이미 아시아계 B형간염 환자가 인터페론 치료에 별 효과가 없다는 기존 주장을 뒤엎는 연구결과를 발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인터페론 치료효과는 백인이 62%, 아시아계가 60%였다. 그동안 아시아계 환자는 인터페론 치료효과가 백인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한박사의 연구로 인종간 차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최근 권위있는 학술지 「메디컬 암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간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을 규명, 간질환 치료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그는 논문에서 이미 간경변을 경험한 경우, 아동이나 청소년기에 B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우, 혈액 1㎖에 철분량이 0.3㎎ 이상인 경우엔 간암 발생률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또 음주 흡연등의 생활습관 때문에 여성보다는 남성이, 그것도 40대 이상이 잘 걸린다고 밝혔다.
특히 혈중 철분량과 간암의 관계를 규명한 그의 연구는 의료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박사는 B형간염이나 간경변에 걸린 한국인 2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혈중 철분량이 0.3㎎/㎖ 이상이면 간암으로 발전할 확률이 50%였다고 밝혔다. 철분량이 이보다 낮으면 간암 발전율이 20%였다.
철분은 생명유지에 필수성분이지만 과잉공급되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한박사의 결론이다. 암세포의 증식에 필요한 영양분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산부가 아니면 철분 흡수량을 줄여야 한다.
한박사는 그동안의 치료경험을 바탕으로 간질환을 바이러스 감염, 만성으로 진행, 만성간염, 간경화등 크게 4단계로 구분하고, 단계별 치료약을 다음과 같이 권하고 있다.
우선 간염에 걸리지 않았다면 백신을 맞아야 한다. 백신은 현재 두 종류가 널리 쓰이고 있다. 만성간염으로 진행중이라면 에피비어가 좋다. 지금까지 알려진 어느 약보다 효과가 뛰어나며, 최소 2년은 복용해야 한다. 현재 실험이 진행중인 아데포비어, 팜시클로비어, 라비카비어등도 권장하고 있다. 만성간염으로 발전했다면 인터페론을 선택하도록 한다.
B형간염에서 간암으로 발전할 때 대부분 거치게 되는 간경화는 3단계로 나눠 치료해야 한다. 먼저 A단계는 복수와 간성혼수 증상을 보이지 않고 알부민과 빌리루빈 수치가 정상인 경우. 간의 기능이 정상이지만 사진촬영을 해보면 약간의 주름이 보이는 초기 단계다. 이 단계에선 대개 수술을 하지 않지만 종양이 있으면 수술할 수도 있다.
C단계는 복수와 간성혼수가 심하고, 알부민과 빌리루빈 수치가 높은 상태다. 기능이 저하돼 있으며 사진을 찍으면 복수가 있고 우툴두툴한 주름이 많이 보인다. 이 단계에선 간이식이 필요하다. B단계는 A와 C의 중간 상태다.
간경화의 치료약물로는 역시 에피비어를 권장하고 있다. 이식수술을 기다리는 기간에도 에피비어를 사용한다. 에피비어를 복용할 경우에도 B단계 이전까지 복수가 있으면 이뇨제를 사용하는등 증상치료를 병행한다.
한박사는 최근 항바이러스제 연구동향에 대해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어 만성간염을 치료하고 간염이 간암으로 발전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낙관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현재 임상실험이 마무리 단계인 에피비어가 B형간염 치료제의 왕좌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간이식 수술을 받기 전후에도 이 약을 사용할 수 있다. 에피비어는 수술 후 B형간염의 재발을 막는데도 뛰어난 효과가 있다. 팜시클로비어도 좋은 실험결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악성종양(암)이 생겼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한박사는 『직경이 5㎝ 이하인 경우에는 약물치료보다 외과적 절제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크기가 4㎝이하의 종양이 있는 암환자 30명에게 외과적 절제수술을 한 결과, 1년 생존율이 95%, 2년 생존율이 69%, 3년 생존율은 50%였다. 1차 절제수술 뒤 종양이 재발한 환자 90명에게 2차 절제수술을 하면 5년 생존율이 40.8%까지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한박사는 또 간이식이 간질환을 치료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간이식을 받은 환자 3명중 2명은 B형간염이 재발했다는 통계를 근거로 들었다. 한박사는 『간이식을 하면 신체가 새로운 간을 받아들이도록 면역력을 억제하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식수술 후 에피비어와 인터페론등의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해 치료효과를 높일 수는 있지만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박사는 보다 효과적인 화학요법이 개발돼야만 치료효율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박사는 궁극적으로 『B형간염 백신을 맞아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간암을 퇴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결론지었다. 또 간염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와 간암으로 발전하는데는 3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정기적인 검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B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나 증상이 없는 30대라면 6개월마다 혈액검사를 받아야 한다. 사진검사는 1년마다 받는 것이 좋다. 그러나 50대는 더 자주 검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술을 많이 마시는 경우, 혈액 철분량이 많은 경우에는 6개월마다 간 사진을 찍어봐야 한다.
◎한혜원 박사의 두 환자/조기발견이 生死 갈랐다
한혜원 박사는 동포사회에 만연한 B형간염을 줄이기 위해 로스앤젤레스 지역을 중심으로 서해안을 오르내리며 이민자교회를 찾아다녔다. 그는 2만명 이상의 한국인을 검진했고, 개인적으로 수천명에게 B형간염 예방접종을 실시했다. 수많은 한국인을 치료했지만 아직도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두 명의 환자가 있다고 한다. 8년 전이었다. 중년의 한국남자 두명이 비슷한 시기에 한박사가 근무하는 제퍼슨대학병원을 찾아왔다. 한 사람은 곧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정상을 회복했다. 두 사람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조기검진 여부였다.
한 환자(당시 52세)는 뉴욕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한박사를 찾았을 때는 이미 간암진단을 받은 뒤였다. 이 환자는 수개월 전부터 심한 피로를 느꼈으나 일 때문으로 여겼다. 그는 하루 10∼12시간을 세탁소 일에 매달려야 했다. 증세가 더욱 심해져 한국인의사를 방문했더니 만성 B형간염이었다. 의사는 특별한 치료없이 쉬라고만 했다. 그러나 몇개월을 쉬었는데도 간염수치는 떨어지지 않았다. 세탁소를 마냥 놀릴 수도 없어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배가 차츰 불러오더니 심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암덩어리가 직경 10㎝로 커졌다고 했다. 환자는 부랴부랴 한박사를 찾았다. 간암은 이미 외부조직에까지 침투해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한박사는 『설명을 듣던 환자가 이제 초등학생인 아들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통곡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환자는 3개월뒤 복강내 출혈로 사망했다.
그 후 8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간질환 치료의술도 많이 발전했다. 그렇다면 10㎝짜리 종양이 있는 환자가 지금 제퍼슨대학병원을 방문한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을까. 한박사는 『종양의 크기가 10㎝가량 되면 초일류 병원에 가도 희망이 없다』고 단언한다. 한박사는 『한국인의사가 간전문가(Specialist)에게 좀 더 일찍 의뢰하지 않은 이유를 모르겠다. 급성간염의 경우 휴식을 취하면 회복되는 경우가 많아 옛날 상식으로 그렇게 조치한 것같다』고 말했다. 한박사는 아직도 그냥 쉬라고만 하는 동포의사들이 있긴 하지만, 점차 전문가에게 보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환자(당시 58세)는 혈액검사과정에서 우연히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임을 알게 됐다. 더 정밀한 검사를 했더니 이미 간염을 거쳐 간경변증 초기였다. 환자는 6개월마다 정기검진, 1년마다 복부촬영을 하는등 간암의 조기발견에 힘썼다. 그는 직장일이 바쁜데다 특별한 자각증상이 없자 1년6개월동안 정기검진을 소홀히 했다. 어느 날 친척 한 사람이 간질환으로 입원하자 갑자기 겁이 나 병원을 찾았다.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결과 간의 한 구석에서 3㎝크기의 종양이 발견됐다. 국소절제수술로 간암을 떼어낸 그는 1년이 지난 지금도 열심히 일하며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
두 환자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전자는 생명을 잃었고 후자는 생명을 건졌다. 두 사람 모두 B형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 여러해 동안 만성간염을 앓았다. 그러나 한 사람은 간암을 너무 늦게 발견해 현대의학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또 한 사람은 간암을 조기 발견한 덕분에 생명을 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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