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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사태때 탱크막아선 시위자 신원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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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사태때 탱크막아선 시위자 신원 밝혀졌다

입력
1998.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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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19세 왕 웨이린/체포안되고 도주… 아직 수배중/타임선정 ‘20세기 혁명가’에 뽑혀천안문 민주화 시위대에 대한 중국 인민해방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된 89년 6월5일. 전 세계는 외신이 전한 한 청년의 사진에 숨을 죽였다. 밀어닥치는 탱크의 행렬 앞에 의연하게 서서 『유혈진압을 중단하라』고 외쳤던 청년. 그는 곧바로 사라졌고 지금까지 생사와 행방이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중국 민주화의 정신적 상징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뿐이다.

검은색 바지에 흰 상의를 입고 손에는 쇼핑백을 쥔 채 탱크를 막아선 그의 모습은 중국인들에게는 민주화의 열망을, 외국인들에겐 천안문사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됐다. 당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이청년를 가리키며 중국의 민주화는 대세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시사 주간지 타임 최신호(13일자)는 이름없는 이 청년을 「20세기의 지도자와 혁명가 20인」중 한사람으로 선정, 발표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 「무명」이 아니었다. 타임지의 보도가 나간 직후인 6일 중국의 인권·민주화운동 정보센터는 공산당 내부문건을 인용, 이 청년은 당시 19세의 왕 웨이린(王維林)이란 사람으로 당시 체포되지 않았고 아직까지 중국 공안당국의 수배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그룹은 90년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션 쥔샨(沈君山) 대만 칭후와(淸華)대 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청년의 신원을 밝히면서 중국당국이 아직 그를 체포하지 못했음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당시 江주석은 지아춘황(賈春旺) 국가안전부장에게 王의 색출을 지시했지만 컴퓨터 탐색 결과 같은 이름이 400명이 넘었고 당시 그의 뒷모습만이 사진에 찍혀 수배가 어렵다는 점을 실토했다는 것.

이 단체는 王이 천안문 민주화운동에 대한 중국 당국의 재평가 작업이 이뤄지기 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타임은 왕 웨이린 외에 20세기의 지도자와 혁명가로 전 미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 소련을 건국한 블라디미르 레닌, 전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 중국공산혁명의 기수 마오쩌둥(毛澤東), 이란 회교지도자 아야툴라 호메이니, 베트남 민족지도자 호치민(胡志明), 나치를 이끈 아돌프 히틀러를 꼽았다.

이밖에 시오도어 루스벨트 전 미 대통령(26대), 프랭크린 루스벨트(32대)와 엘리너 루즈벨트 전 미 대통령부부, 흑인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목사, 여성운동가 마거릿 생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대통령, 데이빗 벤 구리온 이스라엘 건국영웅,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도 20세기의 지도자와 혁명가에 포함됐다.<배국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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