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마지막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처음으로 연극무대에 선 날이다. 「신의 아그네스」. 여러차례 공연된 연극이지만 이 작품을 선택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세 명의 배우만 등장하는 심리극이라 밀도있는 연기훈련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연출자가 젊기 때문에 작품이 새로우리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언제나 푸근한 양희경 언니가 원장수녀역을 맡는 점도 좋았다.두달의 연습기간 중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우선 나 자신을 냉정히 보게 됐다. 특히 덩치에 비해 너무도 「빈약한」 나의 성량에 실망했다. 하지만 반복훈련과 선배들의 도움으로 조금씩 나아졌다. 가장 큰 어려움은 청순가련형으로 굳어진 아그네스의 이미지를 내 방식대로 돌파하는 것이었다. 과거 윤석화 선배와 신애라 언니가 연기했던 아그네스는 청순가련형이었다. 그래서 아그네스와 김혜수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는 내게 닥터 리빙스턴역이냐고 물어온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무대에는 기분좋은 긴장감과 야릇한 흥분이 있었다. 내게 쏟아지는 관객의 시선을 느낄때마다 어떤 엑스터시에 빠지는듯 했다. 공연이 끝났을 땐 믿을 수 없을만큼 가슴이 후련했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한껏 웃으며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무대 인사를 했다. 연출자는 내게 크게 웃지 말라고 조언했다. 아무래도 아그네스의 행실로는 안어울린다고 생각했나 보다.
공연후 나를 찾아온 한 관객은 단지 나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왔는데 덕분에 연극에 맛을 들이게 됐다고 했다. 이제 연극무대에 연연하며 「연극」을 노래부르는 선배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숨결과 숨결이 부딪히고, 땀 속에서 하나가 되는 느낌. 관객과 숨소리 하나까지 나누는 합일감. 「독불장군」이어도 되는 TV와는 큰 차이가 있다. 역시 사람은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지.
아직도 첫 무대의 흥분을 기억한다. 새로운 열정을 찾는 계기가 되어준 이 시간들을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아그네스가 되기 위해 겸허한 마음으로 수녀복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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