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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비관론(흔들리는 주식회사 日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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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성한 비관론(흔들리는 주식회사 日本:1)

입력
1998.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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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發 세계공황’ 오려나/금융불안으로 대출 감소 기업들 잇단 비명/소비위축→투자감소 디플레까지 가속화/‘4월 위기론’ 부상아시아 경제의 주축인 일본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일본이 「재채기」를 하면 아시아가 「폐렴」에 걸린다는 말이 있다. 일본 경제의 하향 곡선은 아시아 금융위기국의 수직 하락과는 달리 아직은 완만하다. 그러나 그 방향이 분명하다. 마땅한 탈출구도 보이지 않아 나아가 세계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1일 98회계년도 시작과 더불어 한결 뚜렷해진 일본 경제위기의 현황과 배경을 짚고 앞날을 전망하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휴일인 4일 도쿄(東京)의 벚꽃놀이 명소인 우에노(上野)공원에는 지난해보다 1주일쯤 늦긴 했지만 벚꽃이 활짝 피었다.

주민회 회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벚꽃빛에 취해 있던 후루카와 가즈야스(古川一安·74)씨. 유압실린더 제조업체의 전무인 그는 『요즘의 일본 경제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요즘 들어 일이 전혀 없다. 이렇게 혹독했던 때는 처음』이라며 금세 상을 찡그렸다.

『벚꽃이 피면 회복 궤도에 오를 것』이라던 정치인들의 약속과는 달리 일본 경제는 회복은 커녕 더욱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97회계년도 마지막날인 3월31일 도쿄증시의 닛케이 평균주가는 1만6,527.17엔으로 마감했다. 주가 폭락으로 시작되리라던 「3월 위기」는 넘겼지만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정권이 약속한 1만8,000엔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98회계년도 시작과 함께 다시 떠돌기 시작한 「4월 위기론」을 반영하듯 3일 금융·증권시장에서는 엔화와 주식, 채권 시세가 동시에 하락하는 「트리플 약세」 현상까지 나타나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 경제의 탄탄한 기초체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왜 「일본 팔자」로 달리고 있는 것일까. 2일 연례 기자회견에서 『일본 경제가 붕괴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대공황 당시의 미국 상황을 떠올린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소니사 회장은 『국민의 비관론이 상황을 악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 경제 위기의 바탕을 불안과 불신에서 찾는 사람은 그만이 아니다.

위를 향했던 경기 곡선이 지난해 11월을 고비로 옆걸음질 하다가 올들어 뚜렷이 아래쪽으로 기울고 있는 직접적인 계기는 금융 불안이다. 일본 전국의 은행들이 스스로 밝힌 부실채권 총액은 76조7,000억엔. 10일께 통과될 98년 예산안 77조 6,692억엔과 맞먹는 엄청난 규모이다. 지난해말 산요(三洋)증권과 도큐요(德陽)시티은행, 야마이치(山一)증권 등의 잇단 도산으로 불안 심리는 단단히 굳어졌다.

금융기관의 대출이 짜지면서 기업, 특히 중소기업의 비명이 잇따르고 있다. 기업의 투자축소와 인원 감축으로 고용이 불안한 가운데 소비심리가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 소비 위축을 출발점으로 보아도 일본 경제가 현재 디플레 악순환의 초입에 들어서 있다는 위기감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4월 소비세가 3%에서 5%로 인상됐다. 이에 따라 소비가 위축하기 시작, 치열한 가격경쟁으로 경상 이익이 줄고, 투자와 고용이 위축돼 다시 소비가 줄고, 경쟁으로 가격이 하락해 기업 이익이 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또 다른 불안은 98회계년도말 529조엔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정부와 지방자치체의 재정적자. 98년 국내 총생산 예상액 520조엔을 넘어서는 규모다.

더 큰 문제는 재정적자의 누증이 재정의 경직화를 부른다는 점이다. 하시모토 총리는 4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일본발 세계 공황」우려에 대해 감세를 포함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재약속했다.

현재 일본 정부와 여당은 4조∼6조엔의 감세를 포함한 16조엔 규모의 부양책을 검토하고 있고 그 규모가 24조엔으로 늘어 나리라는 관측까지 있다. 뚜렷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디플레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경기 부양책의 핵심은 역시 적자를 무릅쓴 재정확대라는 점에서 정책 당국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도쿄=황영식 특파원>

◎저금리­株價하락 ‘자산 디플레’ 심각

『닛케이 평균주가가 1,000엔 떨어지면 간사이(關西)공항 10개 건설비인 15조엔의 자산이 날아 간다』

경제평론가 다케우치 겐이치(竹內健一)씨의 말은 농담이 아니다. 닛케이(日經) 평균주가가 3만8,915.87엔까지 치솟았던 89년말 도쿄 증시의 주식 시가 총액은 600조엔을 넘었다. 그러나 닛케이 평균주가가 1만5,000∼1만6,000엔에 머물고 있는 현재는 300조엔 남짓할 뿐이다. 주요 도시의 상업지역 토지가격이 거의 3분의 1로 떨어진 결과 89년 2,400조엔에 육박했던 부동산 총액은 현재 1,700조엔 남짓으로 떨어졌다. 단순 계산으로는 900조엔의 자산이 물거품이 된 셈이다.

자산가들의 고민일 뿐 서민들과는 무관한 일이고, 거품이 빠져 체질이 강해졌다고 치기에는 너무 심각한 자산 디플레다. 서민가계에도 이미 그 영향이 밀어 닥치고 있다.

담보 부동산의 가격 하락으로 금융기관이 부실화, 대출을 기피하면서 기업이 운영난에 시달리고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 만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쳤다고 판단, 장기저리 주택자금을 끌어 모처럼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룬 월급쟁이들은 집값이 더 떨어지는 바람에 그동안 상환한 원리금을 날린 꼴이 됐다.

예상 자산 소득의 감소도 무시할 수 없다. 퇴직금을 받아도 어디에고 투자할 곳이 없어 은행에 넣어 둔 서민들은 2년반이나 지속되고 있는 재할인율 0.5%의 초저금리로 엄청난 예상 수익을 잃고 있다.

「스톡(Stock)경제 시대」의 저자인 국제대학 미야오 다카히로(宮尾尊弘) 교수는 『일본 경제는 거품이 빠진 것이 아니라 없던 거품을 억지로 쥐어 짜 뺀 것』이라며 『경제실력으로 보아 「거품경제기」의 자산 가격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주장했다.<도쿄=황영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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