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고시마(鹿兒島)현 미야마(美山)에 있는 도예가 심수관(沈壽官)씨 가문의 도자기 박물관에 「히바카리」란 작품이 있다. 일본 도자기의 대명사가 된 사쓰마(薩摩)야키 1세대인 심당길(沈當吉)이 만든 투박한 막사발 같은 이 작품을 심씨는 보배처럼 아낀다. 「불(히·火) 뿐」이란 뜻인 히바카리란 이름엔 정유재란때 일본에 끌려간 도공의 한이 깃들어 있다. 호남을 유린한 사쓰마 영주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군이 남원성을 침공했을 때 붙잡힌 도공들이 고향에서 가져간 흙과 유약으로 구운 것이니 불만 일본 것일 뿐, 사람도 재료도 혼도 조선의 것이란 뜻이다.올해는 심당길을 포함한 남원 도공들이 가고시마땅에 끌려간지 꼭 400년 되는 해이다. 오래 전부터 이 뜻깊은 해를 기다려온 심수관씨는 지난 2월 남원시를 방문해 다채로운 사쓰마야키 400년 행사계획을 밝히고 협조를 구했다. 가마불 봉송, 그네뛰기 우승자 초청공연, 남원 시립 국악단 초청연주, 남원 특산품 전시, 남원 상징탑 건립 등이 양측간에 협의된 내용이다. 심씨는 이달중 현지 자치단체장과 다시 남원을 찾아 이 계획들을 확정한다. 지형이 고향땅과 가장 흡사한 미야마에 가마를 열고 「작은 남원」으로 여기며 400년을 살아온 도공의 후예들은 이제 남원의 혼이 담긴 문화를 호흡하고 싶은 것이다.
여러 행사계획중 가마불 봉송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심씨가 이 행사에 가장 비중을 두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제는 불까지 남원에서 가져가 완전한 남원도자기를 만들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미야마의 조선도공 후예 20명은 올 가을 만복사지 뒤 옛 가마터에서 태양열로 채화, 교룡산 산신당에서 진혼굿을 올리고 조상들이 끌려간 경로를 따라 여수에서 배편으로 일본에 돌아가게 된다. 그들이 남원에서 가져간 불로 구울 도자기는 「히모(불도)」라 불리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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