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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중에서 여덟만 보이기/송혜진(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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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중에서 여덟만 보이기/송혜진(1000자 춘추)

입력
1998.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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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것이 좋다고는 하나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다 드러내 보이는 일은 아무래도 민망하다. 사람들끼리 수시로 교감하는 감정도 그렇고 사람이나 사물의 됨됨이도 그렇다. 음악이나 예술품도 예외는 아니다. 단번에 속을 드러내는 사람은 가벼워 보이기 쉽고 한눈에 속속들이 들여다 보이는 예술은 금방 싫증나기 마련이다. 열 중에서 여덟만 보이고 둘은 숨어 있어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차츰 보이는 그릇을 만들고 싶은 어느 도공(陶工)의 꿈처럼 사람들끼리의 신뢰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예술미는 감추어진 그 「둘」에서 쌓여가는 것이라고 믿는다.요 며칠 한복을 입고 출퇴근을 해보니 멀리서만 바라보던 그 옷의 감추어진 「둘」의 맛에 좀 가까워진 듯하다. 최근 생활한복 바람이 크게 일고, 이 옷 입은 이들이 점차 늘어가는걸 보면서도 사실은 선뜻 좋아지지가 않았다. 전통적인 한복 맵시를 잘 살려낸 옷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여기저기 잰 걸음으로 다녀야 할텐데 많이 불편하겠다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걸음 다가서 보니 이것이 괜한 걱정이었음을 알겠다. 푸근하고 넉넉한 맛이 좋기만 하다. 저고리 깃을 단정하게 여미고 너른 치마 폭 안에서 발걸음을 떼놓으며 한복이 지닌 미의 전통을 몸에 익히는 재미도 적지 않다. 아직은 짧게 자른 머리모양이나 굽높은 구두가 한복과 제대로 안 어울려 걱정이지만, 멋과 맛은 오랜 시간을 통해 배는 것이라 여기며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한복을 입는다.

평상복으로 입을 한복은 조촐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을 정도의 격식을 갖춘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리고 아무리 옷의 기능성을 고려한다고는 해도 천연섬유의 친화적인 질감과 색의 자연스런 비례가 빚어내는 아름다움, 넉넉한 옷 품에 감추어졌던 은근한 맵시가 훼손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얼른 눈에 띄지 않아 잊혀지게 될지도 모를 그 「속멋」을 아끼는 마음 때문이다.<국립국악원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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