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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가 날기까지는…/金容文 현대우주항공 사장(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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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가 날기까지는…/金容文 현대우주항공 사장(특별기고)

입력
1998.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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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우주산업 초장기적 사업이지만 더 많은 투자 이뤄져야”『한 사람이 떡장사로 득리(得利)하였다면 온 동리에 떡방아 소리가 나고, 동편 집에서 술 팔다가 실패하면 서편 집의 늙은이도 용수(술 거르는 기구)를 떼어 들이어, 진(進)할 때에 같이 와­ 하다가 퇴(退)할 때에 같이 우루루 하는 사회가 어느 사회냐, 매우 창피하지만 우리 조선의 사회라고 자인할 수 밖에 없다』

반세기도 전 우리 사회의 성마름과 조급증, 그리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사회분위기를 질타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의 글이다. 이 글을 읽다보면 현재의 우리 상황과 어쩌면 그토록 유사한지 새삼 놀라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어떤 사업분야가 유망하다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과도한 출혈경쟁과 공급과잉으로 시장 질서를 파괴한다. 무분별하게 시장에 진출하려는 신규기업은 「업체 흔들기」를 통해 해당기업 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해외시장마저 혼란시킴으로써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준다. 나아갈 때 와­ 하고 몰려간 폐해가 오늘날 우리가 겪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한 원인이 되었다면, 또한 물러갈 때 썰물처럼 몰려가는 폐단 역시 앞날을 염려케 한다.

그 한 예로 IMF 체제를 맞자 각 기업들은 대부분 분야를 가리지 않고 투자를 보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선 항공우주산업처럼 초기단계에서 투자비용이 높고 투자 회수기간이 15년 이상 소요되는 초장기적인 사업은 그 어려움이 배가된다.

현재와 같은 풍토에선 단기간은 몰라도 장기적인 투자사업은 불가능하다. 투자는 짧게, 결실은 당장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너도나도 목전의 이익만을 중시할 뿐이다.

한국의 경우 세계 12위의 무역규모와 세계 7위의 방위비 규모에 비해 항공우주산업은 20위권 수준으로 국가경제 규모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 상태이다.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은 선진국은 차치하고라도, 88년에 초음속 전투기인 IDF를 제작한 대만이나 경쟁력있는 60∼70석급의 N­250 중형항공기를 독자개발한 인도네시아의 항공산업 수준에도 못미치니 안타까운 심정이다.

항공산업이 낙후된 선진국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항공산업은 초정밀 기계 가공기술, 첨단 신소재, 정밀전자 응용기술과 시스템관리기술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자본재 산업이다. 우리는 해마다 이 분야에서 단일품목 최대의 무역적자를 내고 있음에도, 지난 78년 「항공공업진흥법」을 처음 제정한 후 20년이 다 지난 다음에서야 「항공우주산업개발 기본계획」을 세우고 있다.

각 산업별 부가가치율이 자동차 24.8%, 컴퓨터 36.9%인데 반하여 항공기 43.9%, 위성체가 51%인 점을 보면 국가 기술경쟁력을 대표하는 항공우주산업 부문에서 짜임새 있는 계획과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노력도 미흡했음을 알 수 있다.

항공산업은 2005년에 약 7,000억달러의 시장이 될 전망으로 시급히 개척해야 할 21세기 새로운 시장이다. 훈련기 한 대를 제대로 만들 기술력을 갖추지 못해 비교적 간단한 부품인데도 횡포에 가까운 고가를 지불하고 외국에서 획득해야 하는 우리 실정을 생각할 때, 구조조정이다 뭐다 하여 우루루 몰려다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독수리가 창공을 날기까지는 몇번이나 약한 날개가 강풍에 꺾여 떨어졌다. 그 과정을 견디지 못했다면 독수리도 땅위를 기어다녔을 것이다』라는 경구는 오늘날 난관을 겪는 우리나라의 항공산업에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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