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초 국무총리 서리제의 위헌여부를 놓고 헌법학자들이 언론을 통해 법리논쟁을 벌일 때의 일이다. 『헌법규정을 정직하게 해석하는 한 서리제는 명백한 위헌』이라고 주장했던 한 학자는 『글이 나간 후 폭언과 위협에 시달리면서 이성적이고 건전한 사회로 가는 길이 참으로 험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거꾸로 『헌법의 정치규범적 특성을 감안하면 서리제는 한정적 합헌』이라고 주장했던 한 학자 역시 『반론을 쓴 후 엄청난 시달림과 욕설은 물론 동료학자까지 싸움을 걸어와 망연자실했다』고 토로했다.여기서 어떤 한쪽 입장을 거들 생각은 없다. 다만 지식과 기술축적이 최고의 선으로 예찬받는 이 시대에도, 자신들과 생각이나 입장이 다르면 무조건 적으로 돌리고 윽박지르는 풍토가 우스울 뿐이다. 아직도 이땅에선 「지성과 양식」이 발붙일 곳이 극히 좁다는 현실을 보여준 작은 예이기에.
2일 끝난 영남권 4개지역 재·보선을 전후해 드러난 여야의 「험구(險口)전쟁」을 보면서 정치권이 사회전체의 경직된 사고구조를 더욱 부추기고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한 사례 두가지를 들어보자.
먼저 새 정부의 지역 편파인사 논란. 「과거의 광정(匡正)」 「영남 푸대접」 이라는 여야의 주장은 현상적으로 어느 지역출신 몇 %라는 도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똑같은 종류의 시비에 휘말릴 수 밖에 없다. 결국 문제는 당사자들이 특정 지역색을 벗고 얼마나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인사의 형평성을 따지는게 바람직하다.
다음은 정계개편 논란. 「붕괴」니 「쓰레기」니 하는 말을 쏟아내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 과거의 인위적 정계개편에 직간접적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다만 공수만 뒤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서로 자신만 정직한 척하니 나라만 소란스럽다. 이 문제도 개개 의원의 「변절」과 여당의 「음모」를 탓하기에 앞서 한나라당이 거대야당의 힘과 잠재력을 보여주면 해결된다.
정치권이 뻔한 지성과 양식을 외면한채 선악을 마구 오가니 우리 사회의 지적 풍토는 물론 정서적 판단까지 더욱 척박해지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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