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2년 전이다.「한국, 아·유럽 협력 중심국 부상」, 「세계 정상들, 한국개혁에 큰 찬사」. 96년 3월 방콕에서 열린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당시 보도된 한국일보 기사의 제목들이다.
사진을 본다. 각국의 정상들과 나란히 서서 손을 맞잡은 김영삼대통령. 활짝 웃고 있다. 다른 정상들은 모두 손을 엇갈려 잡고 있는데 김대통령만 유독 양손을 벌려 잡고 있는게 조금 어색해 보이지만, 어쨌든 당당한 모습이다.
ASEM이 끝난 후 가진 김대통령의 기자 간담회. 그는 ASEM의 성과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보도됐다.
『한국은 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이어 유럽과 아시아의 새로운 협력무대에서도 중심국가로 우뚝서게 됐습니다. 유엔안보리 진출, OECD가입, 2000년의 ASEM개최 등으로 이어지는 국가역량의 확대는 바로 세계 일류국가 건설의 전략이자 과정입니다』
왜 굳이 2년전 이야기를 들추는가? 혹자는 힐난할 지 모른다. 오늘의 고통과 처지를 더 극적으로 부각하기 위해서? 아니면 당시의 영광이라도 되돌아 보고, 『그래,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고 자위하고 싶어서? 아무래도 좋다. 역사는 실재하는 「소설」이요, 오늘은 어제의 연장선상이니까.
제1차 ASEM의 주제는 「더 큰 성장을 위한 아시아유럽의 동반자 관계」였다. 그랬다. 어깨동무 사이였다. 동반자 관계는 대등한 키를 전제로 한다. 한쪽으로 힘이 기울 때 그것은 종속의 관계요, 시혜와 구걸의 관계일 뿐이다. 2년 전 아시아의 용(龍)들은 하강을 모르는 경제성장의 꺾은 선 그래프 앞에 우쭐했다. 트럼펫을 마구 불어댔다. 성장이 둔화하고 고실업에 시달리는 유럽에게 「한 수」가르치겠다는 투였다. 상대적으로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역확대가 필수적이었던 유럽은 아시아에 구애의 손짓을 보냈다.
2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세계는 2일부터 런던에서 열리는 제2차 ASEM에서 불과 두 해만에 벌어진 기묘한, 그리고 기막힌 두 대륙의 「역전(逆轉)」을 보고 있다. 아시아는 구걸하고 유럽은 개혁하라고 외친다. 그들은 시혜의 정도를 놓고 저울질한다. 유럽은 국제통화기금(IMF) 예산의 30%를 낸다. 그들은 오직 IMF의 지원계획과 감시를 아시아 위기대응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IMF 중심론」을 강조하고 있다.
또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보호무역주의의 방아쇠를 당길 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한 경고를 특별성명에 포함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유럽이 제시한 「아시아 신탁기금」. 말은 좋지만 뒤집어 보면 금융기술 지원금 외에는 한 푼도 더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은 더 이상 늙은 대륙이 아니다. 지난달 25일 유럽연합(EU)은 당초 예상보다 많은 11개국을 유러(유럽단일통화) 출범국으로 정했다. 「초(超)국가거대 유럽」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냉전시대에 집권한 구정치인들은 퇴장하고 40대 지도자들이 전면에 등장했다.
한 외신은 런던의 기상도를 이렇게 전하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는 날씨가 좋을때는 친구였다』고. 태국의 한 외교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해가 뜨는 날이나 비가 오는 날이나 친구가 돼야 한다』
2년만의 반전(反轉), 겨우 그 초입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떠났다. 그는 출국인사에서 세일즈맨을 자처했다. 2000년 서울에서는 제3차 ASEM이 열린다. 2년 후 또 한 번의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과욕일까? 무리일까? 우리는 「반전의 반전」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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