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의 러시아 총리 해임극은 아무래도 옐친의 병 때문인 것 같다. 술로 몸을 망친 그는 심장수술을 받은 후에도 조금만 조심을 게을리 하면 금방 병석에 누워야 한다. 지난달에도 독감에 걸려 10여일간을 꼼짝도 못했다.요즘에는 사고력에까지 이상증세가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독일과 일본을 핵보유국으로 혼동하지를 않나, 현재 170만명인 러시아군을 300만명 삭감하겠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지 않나, 심지어는 유럽을 겨냥한 핵무기를 당장 전부 폐기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 세계를 경악케 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스웨덴 방문 때는 핀란드에 온 것으로 착각하고서 『우리는 전에 싸웠던 사이지만…』이라며 횡설수설해 청중을 아연케 했다.
러시아 남자의 평균수명은 60세 쯤이다. 올해 예순일곱이니 많이 산 셈이다. 그러나 옐친 자신은 이제 그만 물러설 때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임기가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자기 뒷자리를 노리는 힘센 주변 인물들이 후계자 행세를 하는 모양이 괘씸해서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체르노미르딘 총리의 낙마(落馬)는 바로 그 후계자 행세가 화근이었던 것으로 러시아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지난 3월초에는 미국을 방문한 체르노미르딘이 고어 미 부통령과 만나 「대통령 되기」에 대해 환담을 나눈 것으로 보도됐다. 실제 미국 정·재계는 그를 차기대통령처럼 대접했다. 병든 노인의 의심과 심술을 가볍게 본 것이다.
러시아 헌법은 3선 대통령을 금하고 있지만 옐친의 첫임기는 구소련헌법 때의 일이므로 2000년에 다시 출마할 수 있다는 해석이 있다. 옐친은 말이 나올 때마다 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될성부른 인물을 끌어들여 이용한 뒤 힘이 붙을 만하면 사정없이 「보신탕(狗烹湯)」을 만들어 버린 것이 이제까지 그의 정치행태였기 때문이다. 독선적 권력자 밑에서 큰 인물이 자라지 못하는 것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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