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현기영 ‘순이삼촌’ 발표 30년만에 수난 첫 언급/이후 오성찬·현길언 등 제주출신 작가들 잇단 고발/3∼12일 ‘4·3역사화’展선 강요배의 그림 57점 선봬4·3이란 씨앗
김용해
제주도 사람들은 가슴 속에
4·3이란 씨앗 하나씩 심고 삽니다.
봄이 오면 싹이 나라고
봄이 오면 잎도 나고 꽃도 피라고
물을 주고 가꾸면서 심고 삽니다.
그러나 님이여!
우리에게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봄은 오지 않았습니다.
40년 지나고 50년이 돼도
긴긴 겨울은 풀리지 않아
눈물되고 피가 되는 4·3이란 씨앗 하나
우리들 가슴 속에 그대로 묻고 삽니다.
시집 「아버지의 유언」에서
『그 옴팡밭에서 구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 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 4·3사건의 해원(解寃)작업은 문화계에서 먼저 시작됐다. 이념과 사상의 문제 이전에, 제주인들이 겪었던 수난을 입 밖에 내는 데만도 꼭 30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4·3을 그린 작품은 78년에야 처음 나왔다. 4·3을 최초로 다룬 소설가 현기영(玄基榮·57)씨의 중편 「順伊(순이) 삼촌」은 그 소설의 한 구절처럼, 30년의 세월을 뚫고 날아온 총탄같이 문단은 물론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작품이었다. 집단학살의 시체더미 속에서 용케도 목숨을 건진 「순이삼촌」(남자가 아닌 여자이다. 제주에서는 여자에게도 삼촌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그는 내내 후유증을 앓다가 결국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30년 전의 현장으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해원되지 않은 4·3은 살아 남은 이들에게도 여전히 주검의 현장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순이삼촌」은 제주인의 목소리로 4·3의 상처를 직접 드러낸 문학작품이었다는 점, 발표 자체가 유신 당시의 억압적 사회체제에 대한 도전이었다는 점에서 이중의 충격을 주었다. 현씨는 이듬해 10월 이 소설을 표제로 한 작품집이 발간되자마자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구속돼 고문당하는 수난을 겪는다. 그러나 그는 이후 작가생활의 거의 전부를 4·3의 진상을 고발하고 제주인의 수난사를 그리는 데 바쳐왔다. 그는 『등단 당시에는 순수문학을 하려 했다. 그러나 4·3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문학을 할 수 없었다』며 『이제 더 좋은 「4·3문학」이 나와야겠지만 나는 정작 거기에서 놓여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순이삼촌」은 제주출신 작가들에 의한 잇따른 4·3 고발의 시발점이 된다. 오성찬(吳成贊·58)씨의 「사포에서」(82년)는 제주라는 섬만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고조부때부터의 죽음을 빌려 형상화한 작품이다. 현기영씨와 고교 동문으로 등단이 다소 늦었던 현길언(玄吉彦·58)씨도 「우리들의 조부님」등 제주의 향토색을 바탕에 깔고 4·3을 다룬 빼어난 작품들을 발표했다. 할머니는 공비에, 삼촌은 공비진압군에 희생당한 현씨는 지금 대하소설 「한라산」의 마무리작업 중이다. 87년 6월항쟁 직전 4·3을 주민학살극으로 그린 장시 「한라산」을 발표한 이산하(38·본명 이상백)씨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시부문에서는 「아버지의 유언」등 두 권의 4·3시집을 낸 한국일보 신춘문예(76년) 출신 김용해(金龍海·55)씨등의 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재일동포작가 김석범(金石範·73)씨의 작업. 그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할아버지의 고향 제주의 이야기를 쓴 장편 「화산도(火山島)」로 올해 「마이니치(每日)예술상」을 수상했으며 「까마귀의 죽음」등 4·3을 다룬 단편도 다수 발표해 일본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이다.
미술쪽에서도 4·3은 풀어야 할 화제(畵題)다. 제주 토박이화가 강요배(姜堯培·46)씨는 4·3을 그림으로 옮기는데 스무해의 세월을 바쳤다. 50주년을 맞아 3∼12일 여는 「강요배의 4·3역사화」전에서 그는 사건의 전개과정을 파노라마처럼 그린 드로잉과 유화작품 57점을 선보인다. 강씨는 4·3을 13세기의 삼별초항쟁, 1901년 프랑스함대와의 대치, 1932년 「잠녀투쟁」의 맥을 잇는 반외세투쟁으로 규정하고 그 현장을 세필로 재현했다. 군당국의 소개(疎開)로 온 마을이 불타는 아수라장을 황망히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묘사한 유화 「천명(天鳴)」, 처형당한 이웃을 쳐다보는 마을사람을 그린 「장두」. 강씨의 그림에서 나타나듯 문화계의 4·3 고발은 통한의 제주역사에 이제라도 「맑은 역사의 기운을 쏘이려는」 노력, 바로 그것이다.<하종오·박은주 기자>하종오·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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