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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장부’ 투명하게(국난을 넘자: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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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장부’ 투명하게(국난을 넘자:14)

입력
1998.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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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展示행정 “이제 그만”/血稅낭비 줄이는 일 인원 감축보다 중요외국인들 눈에 「한국의 기적」은 역설적으로 두가지가 꼽히고 있다. 고도성장이 하나이고, 정부와 기업의 행태가 엉망인데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것이 또 하나다. 외국 투자자들은 『도대체 믿을 수가 없다』며 기업과 금융기관의 엉터리 회계장부부터 고치라고 주문하고 있다.

사실 정부의 재정장부역시 적자만 없을 뿐 기업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 투자가 총수의 독단에 좌우되듯 수천억, 수조원의 정부사업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사전·사후검증없이 집행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방만한 투자와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이 외국 자본재수입과 낭비를 불러 외환위기의 한 몫을 했음은 이론이 없다.

경부고속철도 사업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벼농사 중심의 농기계 공급확대정책은 농기계과잉으로 재원의 낭비와 농가의 부채누적을 초래했다. 축사시설 위주의 축산부문 경쟁력 제고사업은 사육두수만 늘려 공급과잉의 우려가 있다』 42조원 규모의 농어촌구조개선사업에 대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평가다. 전직 고위관료의 회고.『도랑을 모두 시멘트로 메웠다. 농어촌구조개선은 없고 지방건설업자의 뱃속만 불렸다. 농어촌은 그대로인데 돈은 돈대로 들었다』 공약사업이라는 명분에 눌려 중복·과잉투자를 한 셈이다.

2000년대초까지 특정분야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G7)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G7사업. 이 사업에 참여했던 모교수는 연구비 3억2,000만원을 횡령, 자동차세 통합공과금 전화료까지 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옛 재정경제원은 대형국책사업과 관련, 올초 대통령직 인수위에 대한 보고에서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과 설계를 부실하게 했다. 공사착공후에도 사업의 진척내용과 성과에 대한 평가·분석 등 체계적인 관리가 미흡했다』고 실토했다.

대형사업의 누수를 막으려면 조사와 설계,공사착공시 예산지원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한뒤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설계·공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 납세자인 국민들의 검증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난해말 현재 115개 민간단체에 6,345억원의 국고보조금이 지원됐다. 지원의 실익이 있는지, 또 제대로 집행되는지 등에 대한 점검은 그들이 낸 형식적인 보고서와 정부의 감사보고서로 끝날 뿐이다.

예산의 배가까운 공공기금도 마찬가지. 각종 과징금 부담금 분담금 기여금 등 준조세로 조성된 기금은 1월말 현재 75개 133조원에 달한다. 예산에서 담당하는 사업을 기금에서 중복지원하는 등 운영이 방만하지만 감독하는 곳이 없다. 담당부처가 작성한 사업계획서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그만이다. 국회의 심의조차 받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경우 2026년부터 수입보다 부담금이 늘고, 2032년엔 적립기금이 바닥이 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자칫 국민들이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사태도 빚어질 수 있다.

IMF체제를 조기에 극복하려면 정부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고통이 담긴 혈세를 낭비없이 사용하는 일은 인원감축이나 봉급삭감보다 몇 갑절 더 중요한 문제다. 공무원 수를 설령 몇 십% 줄이더라도 재정의 효율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전시효과이상의 실효를 거둘수 없다.<정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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