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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재벌 유착 끊어야(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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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재벌 유착 끊어야(사설)

입력
1998.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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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은행들이 약자들에겐 비정하리만큼 가혹하고, 강한 자에겐 어처구니없이 약하다는 비판을 들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1년새 30대 재벌의 은행빚이 33조나 늘었다는 최근 보도는 은행들의 그런 속성을 잘 보여 준다.요즘 버젓한 직장에 다니는 젊은 가장들이 처가살이를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대출을 받았거나 빚 보증을 섰다가 일시에 수천만원을 갚으라는 은행의 독촉에 못 견뎌 전세금을 빼 주고는 처가살이를 감수한다는 얘기다.

4월1일부터 할부금융사의 대출내역이 은행권 신용정보망에 넘어가면 주택·승용차를 할부구입한 사람중 상당수가 비슷한 개인파산의 처지가 될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은행과 재벌의 관계는 너무나 딴판이다. 29일 은행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30대 재벌의 은행여신은 지난해말 현재 111조2,773억원으로 1년새 33조원 이상 늘어났다. 특히 상위 5대재벌의 은행빚은 68조원에 육박, 같은 기간중 21조7,548억원이나 늘어났다.

은감원은 지난해 재벌의 은행대출이 급증한 이유로 환율상승과 협조융자 남발 등을 들었다. 외화대출을 많이 쓴 대기업은 추가차입 없이도 환율상승폭만큼 대출잔액이 늘어나는 측면은 분명히 있다. 또 도산 직전인 대기업들에 협조융자를 퍼부어댔으니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현대(59.6%), 삼성(40.5%), 대우(58.6%), LG(28.3%), 한진(43.0%)등 상위 5대재벌의 여신증가율이 30대재벌 평균치(43.0%)보다 높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5대재벌이 협조융자 대상이 됐다는 얘기는 아직 들어 본 적도 없다.

IMF체제 이후 은행은 서민이나 중소기업의 쥐꼬리만한 대출에 대해서는 당장 갚으라고 요구하면서 재벌들에겐 수십조원을 나눠준 셈이다. 이미 엄청난 빚을 안은 재벌은 「맘대로 해보라」며 버티고, 본전 생각에 다급해진 은행은 「정부가 어떻게 해 주겠지」라며 마구 빚을 늘려준 결과가 아닌가. 국민경제를 담보로 삼은 재벌과 은행이 흡사 탯줄 이어진 쌍둥이처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는 배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의 은행 가운데 살아남을 곳은 2∼3개 뿐이라느니, 대기업의 막대한 외화부채 때문에 한국이 곧 2차 외환위기를 맞을지 모른다는 외국 보고서가 나오는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도대체 재벌과 은행의 유착관계가 이럴진대, 정부가 은행에 의한 재벌 구조조정을 소리높여 외쳐봤자 결론은 뻔할 것이다. 대공황 극복의 이론적 배경을 만든 경제학자 케인스는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비(非)자본주의적인 수단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MF체제 이후 재벌과 은행이 보인 태도로 볼 때 시장원리 적용은 분에 넘치는 대접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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