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 급성백혈병 판정/유전성 질환 아니란 말에 목숨 걸고 출산했는데/잘 자라던 아들마저…『저는 어떻든 괜찮습니다. 제발 우리 어린 아들만이라도 살려주세요』
백혈병으로 고통을 겪고있는 어머니가 역시 백혈병 판정을 받아 생사의 갈림길에 선 네살배기 외아들을 위해 올리는 눈물의 기도이다.
배명숙(裵明淑·29·여·대구 북구 대전동)씨는 매일 오후 병마에 지친 몸을 이끌고 영남대병원에 입원중인 아들 재길(在吉)이를 찾는다.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로 까맣게 피부가 타버린 재길이가 극심한 항암치료의 고통을 호소하며 울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배씨를 더 서럽게 하는 것은 매년 6,000만원이 넘게드는 치료비다. 이 돈을 감당못하면 결국 아들을 잃게 된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불행은 배씨가 재길이를 임신한지 다섯달만인 95년4월부터 시작됐다. 갑작스런 복통과 함께 온몸 여기저기에 난데없이 시퍼런 멍자국이 나타났다. 급성백혈병이었다. 그래도 뱃속의 아이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배씨는 같은해 8월 「목숨을 걸고」 재길이를 낳았다. 그러나 무리한 해산과 항암치료로 면역기능이 급격히 저하, 몸의 일부가 썩어들어갔다. 친정아버지는 백방으로 좋다는 약을 구하러다니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멀쩡하게 잘 크던 재길이가 지난해 비슷한 증상을 보이더니 또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모자가 함께 백혈병에 걸리는 경우는 극히 드문 사례로 우리나라에는 보고된 적이 없다. 유전성 질환이 아닌 백혈병은 임신중에 걸리더라도 태아까지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로 담당의사들은 『배씨 모자는 「우연의 일치」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3년간의 모진 투병생활 끝에 남은 것은 빚 2,000만원과 20만원짜리 반지하 월세방. 남편 나상국(羅相國·34)씨는 아내와 아들에게 수혈할 혈소판을 구하러 다니느라 회사마저 그만두었다. 생활비는 동사무소에서 나오는 월 생활보조금 6만원과 나씨의 전직장인 서륭산업에서 도와주는 50여만원이 전부다. 일주일에 50만원씩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배씨에게 3,000만원이나 드는 아들의 골수이식수술은 요원한 꿈이다. 배씨는 재길이만은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신은 잊은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윤태형 기자>윤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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