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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바이러스는 인종차별이 없다(재미언론인 이경원의 체험보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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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염바이러스는 인종차별이 없다(재미언론인 이경원의 체험보고:3)

입력
1998.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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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수술후 재발·사망률 아시아인이 높다는건 낭설 조기발견여부 차이일뿐”「아시아인 간염환자는 이식수술을 해도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통념은 오랜 세월 미국의료계를 지배해 왔다. 아시아인은 간이식수술을 받아도 재발 가능성이 높고, 비아시아계 환자보다 쉽게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와 비아시아계 환자의 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위와 같은 통념의 진실성을 규명하기 위해 6년간 연구해온 스탠퍼드대학 메디컬센터의 에멧 키프 박사는 『연구결과 우리가 내린 최종결론은 간염바이러스는 인종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대학(UCLA)병원의 경험과는 반대로 우리는 간이식수술을 받은 아시아와 비아시아계 환자의 간염 재발률 및 간염관련 사망률에 있어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은 아시아사회의 대중, 특히 간염환자들과 일부 내과의사에도 퍼지고 있다. 우리는 최근 시카고에서 열린 전국적인 학회와 권위있는 간전문지에 이같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키프 박사팀은 88년부터 94년까지 간이식수술을 받은 아시아인 15명과 비아시아계 환자 20명을 비교조사했다. 이식수술후 사망자는 아시아인이 40%(6명)로 비아시아계(20%)보다 2배나 많았다. 그러나 아시아인 사망자 6명중 5명은 간염 재발과는 무관한 요인으로 숨졌다. 반면 비아시아계 4명은 모두 간염이 재발해 목숨을 잃었다.

수술후 1년 생존율도 아시아인 환자가 59%로 비아시아계의 94%에 비해 낮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시아인 환자는 수술당시 40%(6명)가 미국장기이식분배기구(UNOS) 1등급이었으나, 비아시아인은 10%만이 같은 등급이었다. UNOS 1등급은 간이식을 받지 않을 경우 1주일내에 사망하는 위중한 상태를 말한다. 아시아인 환자들은 간염이 만성화해 구제불능상태가 된 뒤에야 의사를 찾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연구결과가 보여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간이식이 필요한 환자를 좀 더 일찍 전문가(Specialist)에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키프 박사는 『아시아계 간염환자를 치료하는 내과의사는 이식수술이 가능하도록 좀 더 일찍 환자를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항바이러스약물을 이용한 실험결과도 비슷했다. 간이식수술후 B형간염이 재발한 아시아와 비아시아계 환자들에게 단일 HBIG요법이나 갠사이클로비어를 장기 투여한 결과 어떤 중요한 차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식수술을 받은 아시아인 환자들의 1년 생존율이 낮은 것은 간질환이 너무 악화한 뒤에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계 간전문가인 스탠퍼드대학 메디컬센터의 서삼 박사는 『우리는 UCLA의 보고를 믿을 수 없다. 과학적인 견지에서 볼 때 아시아인과 코카서스인이 질병 발생에 차이를 보일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간이식센터를 운영중인 UCLA연구팀은 93년 대규모 실험을 통해 아시아인이 간이식후 재감염될 가능성이 더 크며, 실제로 간염이 재발해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간이식을 끝낸 아시아인 16명과 비아시아계 환자 29명을 장기추적했다. 그 결과 아시아인의 31%(5명), 비아시아계는 3.4%(1명)가 한달내 숨졌다. B형간염이 재발한 경우는 아시아인 72%, 비아시아계 22%였다. 그러나 키프박사는 『아시아인 환자의 생존율이 떨어지는 것은 인종적인 문제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서삼 박사는 『간질환은 아시아와 미국의 아시아계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보건문제이다. 약 2억명의 아시아인이 B형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고, 미국내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120만명중 절반가량이 아시아계이다』라고 말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미국의 아시아계사회도 간암의 조기검진 필요성에 눈뜨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 남쪽에 있는 한 종양학센터는 한국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조기 간암검진사업을 벌이고 있다. 스탠퍼드대학 아시아간센터는 내과의사에 대한 교육과 환자상담을 진행하는 2년짜리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제퍼슨대학병원 간암예방센터 소장 한혜원(韓惠媛·62) 박사는 83년부터 수만명의 아시아계 이민자를 대상으로 조기 간암검진 및 예방접종사업을 해왔다.

B형간염 퇴치에 앞장서온 연구자와 의사들은 간질환에 대한 아시아인의 오랜 두려움과 숙명론이 여전히 B형간염과의 전쟁에서 패하게 하는 주범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나 빈센트 메디컬센터 책임자인 마틴 리 박사는 『한인사회는 간염퇴치사업에 대단히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해 2월부터 한국인남녀 780명이 간암 조기검진을 받았고, 현재 3,000명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중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삼 박사는 『미국인의 0.2%만이 B형간염 바이러스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아시아계 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정기적으로 간암검진을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40세 이상 남성은 정기검진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한박사도 이같은 주장에 동의한다. 그는 2만명 이상의 아시아계 환자를 조기검진했다.

특히 40세 이상 남성중 술을 많이 마신 사람, 간경화가 있는 사람, 철분수치가 높은 사람과 같은 위험그룹에서 진행성 암을 수없이 목격했다. 서박사는 『아시아계 환자들은 초기 암일 가능성이 높다는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안타까워한다.

헌팅턴기념병원의 마이런 통 박사는 1,000명 이상의 아시아계 만성 B형간염환자를 치료했다. 그가 한국인환자들에게 들려주는 충고는 다음과 같다. 『간전문가(Specialist)를 찾아라, 생검(生檢·간생체조직의 현미경 검사)을 하라, 바이러스를 억제하라, 꾸준히 치료하라』 그는 20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를 중국계 15%, 한국계 8%, 일본계 2%등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같은 아시아인에게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는 불명확하다. 아시아계 신문에서 약초등의 민간요법 광고를 수 없이 접한 그는 『아시아의 전통적인 치료법이 B형간염 바이러스를 제거한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UCLA간이식센터의 로널드 부쉬틸 박사는 『지금까지 많은 한국인환자를 수술했다. 그 중에는 암으로 진행한 젊은 남자환자도 있었다. 간이식수술에 성공한 환자는 대부분 조기검진을 통해 간염의 악화여부를 추적해온 환자들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동료인 레오너드 골드스타인 박사도 아시아계 환자는 대부분 암으로 진행한 후에야 이식센터를 찾기 때문에 생존율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국가들이 조기 검진에 더 열성이다. 미국의 아시아 이민자들은 그들이 조국에서 했던 것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신약 ‘에피비어’ B형간염 치료에 탁월한 효과

홍콩출신 이민자 존 리씨는 2년전 B형간염 말기였다. 그는 죽음이 임박하자 임상실험에 참여키로 약속하고 간이식 대기자로 등록했다. 그러나 몇주일 뒤 등록을 철회했다. 6개월후에는 생업에 복귀했다.

조그만 항(抗)바이러스 약제가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그 약은 라미부딘(lamivudine) 또는 3TC로 불리는 화합물로 영국의 대형 제약회사 글락소웰컴이 「에피비어(epivir)」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존 리씨를 치료한 UCLA 데이비스 메디컬센터의 네빌 핌스톤 박사는 『에피비어를 하루 100㎎씩 복용시킨 결과 바이러스가 사라졌다』고 밝혔다.

두통에 아스피린, 위궤양에 잔탁이라는 대표적 약물이 있듯이 에피비어는 B형간염 치료제의 대명사가 될 전망이다. 핌스톤 박사는 『에피비어는 정상적인 삶을 약속한다』며 『간염치료의 획기적인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84년부터 3,000명의 환자에게 간이식을 해온 베테랑 외과의사인 부쉬틸 박사도 『HBIG와 함께 에피비어를 복용하면 간이식수술 후 B형간염의 재발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간염전문가인 레오너드 골드스타인 박사도 『인터페론으로 치료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에피비어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극찬했다. 키프 박사는 『에피비어는 효력이 뛰어나고 복용도 쉽기 때문에 환자에게 적극 권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에피비어는 에이즈치료제 개발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90년 초 이 약제로 동물실험을 한 결과, 에이즈보다는 B형간염 바이러스 퇴치에 더 큰 효력을 발휘했다. 글락소사는 그 후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간염환자에게 대규모 임상실험을 했다. 1년 후 눈에 띄는 결과가 나타났다. 하루 100㎎씩 복용한 환자 358명중 96%가 바이러스를 극복했다. 그러나 이들 중 10%는 약에 거부반응을 보였다. 복용을 중지한 사람은 바이러스에 재감염돼도 증상이 복용전보다 나쁘지 않았다. 장기복용할 경우 간염바이러스가 약에 내성을 가지는지 여부를 판가름하기 위한 연구가 현재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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