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선 당시 김대중(金大中) 후보자의 캐치프레이즈는 「준비된 대통령」이었다. 김후보자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전적으로 이 선거구호의 덕은 아닐지 몰라도 「준비된」이란 어휘가 유권자들에게 준 매력은 상당했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듯하다. 특히 대선이 끝난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치자 상당수 국민들은 경제난국에 대처하는 김대통령의 모습을 지켜보고 과연 「준비된 대통령」이란 선거구호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준비가 됐을지는 몰라도 참모들이 과연 「준비된 인물들」인지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는 지난 주말 일어난 한 정부 산하단체장 인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한국마사회장은 문화관광부 장관이 임명한다. 그러나 28일 오영우(吳榮祐) 신임회장의 임명사실은 청와대 박지원(朴智元) 대변인이 발표했다.
신임 마사회장이 임명부서인 문화관광부가 아니라 청와대에서 발표될 정도로 비중있는 자리는 결코 아니다. 박대변인의 발표사실이 알려진후 문화관광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장·차관이 숙의를 하고 퇴근한 담당국장이 긴급 호출돼 사무실로 돌아왔다. 서너시간후 「문화관광부는 오영우 예비역 육군대장을 후임회장에 임명했다」는 짤막한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 뒤늦었지만 임명권자 부처의 소임을 다했다.
마사회장 임명 사실을 문화관광부가 아닌 청와대가 발표한 것은 일과성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해프닝은 바꾸어 말하면 대통령의 참모들이 마사회장직 뿐만아니라 상당수 「자리」를 누가 어떻게 임명하는지조차 모른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이번 인사는 「준비되지 않은 참모진」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반증해준다. 「준비된 대통령」에 걸맞게 보좌진들도 「준비된 참모」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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