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장 1호/“성실·친화력 앞엔 성편견도 무너져”/여성行試도 1호… 공개경쟁통한 여성중 현재 최고위직/노동전문가·34만인구의 시장으로 서민행정 25년/6월 퇴임후엔 국제협력분야서 ‘여성 새길’ 도전전재희(全在姬·49) 광명시장의 명함에는 이름 석자 밑에 오톨도톨한 점자이름이 찍혀 있다. 맹인시민을 만날 때를 대비한 것이다. 최초의 여성시장, 행정고시 여성합격자 1호(13회)등 화려한 이력이 주는 위압감을 단번에 상쇄하는 친화력은 이런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에 깔고 있다.
전시장은 특채나 별정직이 아닌 공개경쟁을 통해 공직에 나선 여성들중 현재 최고직위에 오른 사람이다. 보수적인 공무원사회에서 남성동기들에 뒤처지지않고 제때 승진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대상이었는데 95년 최초의 민선시장으로 인구 34만명인 광명시의 살림을 맡았다. 「여자가 시장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하고 뜨악해 하는 눈길을 새벽 6시 거리청소를 하며 시민들과 만나 시정을 논하는 억척스러움으로 맞받아치면서 그는 「넘지 못할 산은 없다」는 좌우명을 실천하고 있다.
전시장은 25년간의 공직생활을 『공직사회의 편견과 싸우는데 전력투구한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대졸여성들의 취업이 여의치 않던 73년 그는 『연줄없이도 취직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행정고시를 쳤다. 결과는 합격자 300명중 홍일점. 첫 여성 행시합격자라는 보도가 나가자 이름이 같다는 60대 할머니가 보낸 격려편지, 바로 전 해 기술고시 최연소 합격자였던 김형률(48·인천조달청장)씨가 보낸 축하문등 전국에서 온 축하편지가 라면박스로 두 개였다. 김씨와의 인연은 결혼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환희의 시간은 짧았다. 연수를 마친뒤 행정조직을 전체적으로 조망해 고급공무원으로 크겠다는 포부에서 총무처를 1지망으로 적었지만 『총무처에는 여자가 할 일은 없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2지망이었던 경제기획원에서는 아예 고려대상도 안됐고 결국 3지망인 문공부에 배정됐다. 남자동기들은 보통 1, 2지망에서 부처가 결정됐다. 당시 문공부 이계현차관은 『여자라고 우대받을 생각도 하대받을 생각도 말라』고 했지만 전시장은 『남자가 잘 한다는 자리에서 여자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결심했다.
공무원으로서의 능력은 74년 노동부로 옮기면서 꽃피기 시작했다. 서민층을 행정의 수혜자로 하는 일들이 적성에 맞는다는 전시장은 노동부에서 근로기준국 직업훈련국 노동보험국등 요직을 두루 거쳤고 노동부 직업훈련국장으로 근무중이던 94년 전격적으로 관선 광명시장에 임명됐다. 『부처간의 폐쇄성이 강한 공직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전문성이 필요하다. 당시 노동분야 전문가로 클 생각이었기 때문에 시장직을 제의받았을 때 무척 망설였다. 공들여 쌓은 탑을 무너뜨리게 되지는 않을까 며칠 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는 그는 또 다른 분야에서 여성의 능력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자는 생각으로 겨우 마음을 돌렸다.
시장직은 예상대로 어려웠다. 관선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야당세가 강한 광명시의 지방정서가 좋지 않았고 휘하의 국장 6명은 모두 남성연장자였다. 부임 다음 날부터 직접 민심을 접하고자 새벽 6시면 빗자루를 들고 거리로 나갔지만 「쇼하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더 심했다. 『공직사회에 대한 시민의 불신이 가장 큰 문제라고 느꼈다. 시민들이 시정에 많이 참가하게 만들고 광명시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 시급했다』 시민 300여명이 참가하는 시정모니터제나 학원폭력 예방을 위해 주부 2,700여명이 참가하는 「우리자녀 우리가 지키기운동」등은 이런 발상에서 나왔고 큰 호응을 얻었다. 또 시민의 3분의 1이 20세 미만의 청소년들이지만 고교가 부족해 외지로 나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교부에 도시계획법 시행규칙 개정을 건의, 그린벨트 제한규정을 일부 풀도록 했다. 이에 따라 95년 3월 고교 3개를 신설할 수 있었고 그해 6월 전시장은 민선시장으로 당선됐다.
성공 뒤에는 회한도 있다. 시장으로서는 전문대를 유치하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이 아쉽고 여성으로서는 시어머니에게 『평생 씻지 못할 불효』를 저지른 것이 가슴에 못으로 남아 있다. 「일하는 며느리」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던 시어머니는 84년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타계 직전 『너무 아프다. 직장 그만두고 나 좀 간호해다오』하고 애원했지만 전시장은 울면서도 『제가 (집에) 빨리 올 수 있도록 노력할께요』라고만 했다. 그때는 그렇게 일이 중요했다.
전시장은 6월30일로 퇴임한다. 재출마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공직은 시민들을 위한 정책을 결정하고 수행한다는 점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인 동시에 역량을 넘어서는 자리에 앉으면 책임의 무서움을 절감하게 되는 자리』라는 그는 앞으로 국제협력분야에서 여성의 새 길을 열 작정이다.<이성희 기자>이성희>
▷약력◁
49년 대구 출생
67년 대구여고 졸업
72년 영남대 행정학과 졸
73년 제13회 행정고시 합격,행정사무관 임용
82년 서기관 승진
82∼90년 노동부 부녀소년과장,공공기획과장,임금복지과장
90년 부이사관 승진
90∼91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원 수학
91∼93년 노동부 부녀지도관,노동보험국장
93년 이사관 승진
93∼94년 노동부 근로감독관,직업훈련국장
94년 제10대 광명시장(관선)
95년 제11대 광명시장(민선)
◎여성행시출신자들 현황/매년 합격자 늘지만 ‘유리천장’ 엄존
공개경쟁인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여성은 97년말 현재 124명(행정자치부 집계)이다. 첫 합격자인 전재희 시장을 뒤이어 8년만인 81년에야 2호인 장옥주 보건복지부 연금재정과장(고시 25회)이 나왔다. 장과장 역시 150명 합격자중 유일한 여성. 94년까지 한자리 수를 기록했던 여성합격자 비율은 95년 처음 10.4%로 올라선뒤 96년 9.9%, 97년 11.2%(224명중 25명)로 괄목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97년부터는 정부가 공무원 선출에 일정 비율 이상의 여성합격을 의무화한 여성채용목표제를 도입, 여성공무원의 증가에 일조하고 있다.
여성들이 행시를 치는 가장 큰 이유는 공무원사회가 제도적으로는 남녀평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시출신 여성 공무원들의 모임인 「금강회」회장 이계영 서기관(교육부 여성교육정책담당관·고시 27회)은 『내부적으로는 유리천장이 엄존한다』고 잘라 말한다. 단적인 예로 이서기관은 부처의 내부행정을 총괄하는 총무과에 진출한 여성이 드문 점을 든다. 97년 여성정책 담당부서인 정무2장관실 총무과장이 여성으로 임명된 것이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 중앙부처내 인사교류에서 여성들이 그만큼 소외되고 있다는 뜻이다.
여성공무원 가운데는 차별의 조건을 뛰어넘었다는 행시 출신들조차 90년대 들어서야 정부부처에 골고루 배치되기 시작했다. 재경부 외교통상부 산업자원부에 95년 들어서야 행시 출신 여성이 배치되었으며 국방부에는 97년(유균혜 국내정책과 사무관·39회)에야 진출했다.
물론 여기에는 여성 자신의 한계도 있다. 행정고시 합격 자체가 여성은 교육행정분야에 집중돼 있어 합격자의 약 30%정도가 교육부에 배치되어 있다. 이때문에 여성들 스스로 적극적인 진로모색과 숫적인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이성희 기자>이성희>
◎세계의 여성시장/베네수엘라 사에즈 시장능력 평가받아 대권 선두주자 부상
여성의 정치 참여가 늘면서 세계 각국의 여성시장도 늘고 있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여성시장이 많이 배출됐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시 첫 여성시장인 다이앤 파인스타인, 워싱턴시의 샤론 프레트 캘리, 솔트레이크시의 디디 코라디니, 독일 본시의 베르벨 데렉크만 시장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최근 가장 급부상하는 여성 시장은 베네수엘라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레네 사에즈다.
파인스타인 시장은 70년 샌프란시스코의 첫 여성 시의회 의원으로 출발해 80년 시장으로 선출되었다. 워싱턴시 첫 여성 시장인 캘리는 91년 선출돼 범죄 예방 활동과 환경 개선 사업에 관심을 쏟았다. 2월 내한했던 솔트레이크시 첫 여성 시장 코라디니는 91년 선출돼 원만한 시정 운영으로 95년 재선됐으며 올해에는 미국시장협의회장으로 뽑혔을 정도이다.
베네수엘라 차카오시의 사에즈 시장은 올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44%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 81년 미스 유니버스 출신이자 정치학 석사이며 시장 재임 6년동안 범죄율을 60%나 줄이는 등 행정 능력도 인정받았다.
아시아에서도 여성시장들이 늘고 있다. 일본의 첫 여성시장은 91년 효고(兵庫)현 아시야(芦屋)시에서 선출된 변호사 출신의 기타무라 하루에(北村春江)로 93년에는 일본 유력 월간지인 「THE 21」이 선정한 「훌륭한 시장」 600여명중 9위를 차지했다. 이밖에도 필리핀은 170명, 태국은 7명이 여성시장으로 우리나라보다 숫적으로 앞서 있다.<노향란 기자>노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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