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패권다툼 씻고 화해/21세기 새동반자 틀 구축피로 점철된 역사의 앙금을 씻고 평화의 21세기를 준비한다. 유럽대륙의 패권을 놓고 금세기 내내 힘겨루기를 거듭했던 러시아 독일 프랑스가 26일 화해의 손을 맞잡으며 유럽 「트로이카(3두) 체제」의 주춧돌을 놓았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 헬무트 콜 독일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은 이날 처음으로 모스크바에서 3국 정상회담을 갖고 『거대한 유럽의 3두마차가 성공적으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개인적인 친분을 앞세운 옐친 대통령의 주도로 이뤄져 아직 장밋빛 꿈을 설계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그러나 모스크바 3자 회동은 중부유럽의 맹주격인 독일과 서부유럽의 핵인 프랑스, 그리고 동유럽과 거대한 영토를 가진 러시아가 새로운 동반자 시대를 열어가는 틀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과소평가할 수 없다. 특히 3국은 과거 여러차례 총부리를 서로 겨눈 적대국이었다.
「3두체제」의 시동은 일단 순조로운 듯하다. 정상들은 ▲21세기형 수송기인 AN 70기 공동 생산 ▲런던파리베를린바르샤바모스크바를 연결하는 유럽횡단도로 및 철도 건설 ▲우주분야 협력 ▲자연 또는 인위적인 재난에 대비한 3국 공동의 구호부대 창설 ▲3국간 문화교류 문제 등을 논의했다. 또 발칸반도의 화약고로 떠오른 코소보사태와 국제사회의 골칫거리인 이라크 문제가 거론됐다. 첫 만남치고는 의제와 내용이 괜찮았다는 평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3자 회동이 냉전종식후 세계질서가 미국 1극체제로 재편되고 유럽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옐친 대통령은 『3자 회동이 다극화 세계 구축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유럽에서 미국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트로이카 구상」을 제기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이해도 러시아와 맞아 떨어진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사사건건 충돌하는 프랑스나 통일전 안보문제를 미국에 일임했던 독일에 미국은 구 소련붕괴후 유럽대륙의 홀로서기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가 지난해 10월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러시아유럽연합 정상회담에서 옐친 대통령의 3자회동 제의에 선뜻 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로이카 구상」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르바초프 전소련대통령이 80년대 말 주창한 「유럽공동의 집」과 맥이 닿아있다. 유럽대륙위에, 유럽인의 손으로, 유럽의 평화를 보장할 안보 체제를 구축하자는 주장이다. 유럽인들의 이같은 희망은 99년 5월 프랑스에서 열릴 차기 3국 정상회담에서 확실히 드러날 것이다.<이진희 기자>이진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