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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인선의 含意/노진환 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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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인선의 含意/노진환 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8.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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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한 탓인지는 모르나 이 지구상의 문명국가운데 대사를 소위 「정치적 임명직(political appointee)」으로 일부 채우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는듯 싶다.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등 대부분의 국가들은 대사가 직업외교관 몫이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들이 그럼 왜 직업외교관을 대사로 기용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십중팔구 「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서투른 인사를 공관장에 기용했다가 외교를 망치는 낭패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낭패는 순간적이지만 복원엔 오랜 시간과 많은 국력이 소요된다. 숙련된 직업외교관을 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초강대국 미국만큼은 가끔 예외가 있다. 주로 대선캠페인에 참여한 싱크탱크나, 고액 헌금자, 혹은 거물급등을 정치적 배려로 더러 대사에 기용한다. 전세계에 거미줄마냥 깔려있는 CIA조직등이 대사중심의 공적채널을 보완하기 때문이다. 단 이때도 민감한 지역은 피한다. 후세인의 감춰둔 살상무기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는 이라크에 한가하게 정치적 대사를 임명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일단 특임된 대사는 단임(just one term)이 불문율이다.

24일 내정인사로 발표된 미 일 중 러시아 유엔대사등 이른바 「빅 5」인선은 「안전한」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대부분이 「외부충원」되리라던 당초예상과 비교해 보면 더욱 그렇다. 우선 특정지역이나 정파로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또 주미, 주러시아대사등 「정치적 임명」도 이미 관련분야에서 검증된 인사라는 점에서 이번 인사는 후한 점수를 받을만하다.

당초 김대중 대통령은 이들 「빅 5」에 스케일이 큰 정치인대사를 물색하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 또 그런의사를 밝힌바도 있다. 아마도 직업외교관의 결점을 보완할 수 있는 새인물의 수혈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 않았나 보인다. 특히 IMF사태에 즈음, 월가(街)에서 우리 입장을 변호하는 미국인이나 한국인을 찾기 어렵다는 지한파(知韓派)인사들의 잇단 충고가 이런 결심의 촉매제였던 것으로 짐작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결과는 경력직 중용으로 나타났다. 김대통령 결심의 후퇴요인이 「그래도 경력직이…」하고 안전 운행쪽을 택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외무부의 철벽수비가 주효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적재(適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장 유력하다. 왜 직업외교관들이 이렇게 불신을 받게 됐는지를 이제 한번쯤 곱씹어 봐야 할 시점이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세상에서 「한번 외교관이면 영원한 외교관」일 수는 없다. 변화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도록 현실은 냉엄하다. 외교관이라고 「철밥통」일 수는 없다.

이번 인사에서 단연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홍구 한나라당고문의 주미대사 기용이다. 외교의 초당성(超黨性)을 아무리 강조해 본들 파격임에 틀림없다. 한때는 경선주자였고, 또 총리와 당대표를 지낸 거야(巨野)의 간판급을 「징발」한 대통령의 함의는 알 수 없지만 누가 보아도 다목적임이 분명하다. 「전문성을 구실로 야권인사 각개격파」라는 현실적 해석도 그래서 가능하다. 김대통령이나 여권이 한결같이 이같은 확대해석에 손을 내젓고 있지만 적어도 나타난 결과는 그렇다.

어쨌든 외신의 지적처럼 「전직 스파이두목(ex­spy chief)」의 자해소동으로 지금은 혼란스런 상황이다. 실추된 국가신뢰도 회복을 위해 이들 외교관들이 한시바삐 외교현장으로 달려 가야 할 시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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