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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이윤택/한국 연극계 ‘최고’ 2인 불꽃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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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백·이윤택/한국 연극계 ‘최고’ 2인 불꽃논쟁

입력
1998.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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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이강백씨와 연출가 이윤택씨. 각기 자기 영역에서 「최고」를 자부하는 두 사람이 우리 풍토에서는 드문 논쟁을 벌였다. 대결은 24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이강백연극제」 제작발표회에서 벌어졌다. 논쟁주제는 결국 연극의 대중성과 문학성문제였다. 문화예술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인식이 확고하지 못한 시대에 연극계를 이끌고 있는 두 사람의 설전은 「연극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로 이어졌다. 두 사람의 발언과 별도취재한 내용을 붙여 논쟁을 재구성한다.◎연극,대중성이냐… 문학성이냐…/이강백­“관객수는 관심없다 인간내면에 눈을 돌려야 한다”/이윤택­“연극은 대중과 만나고 신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윤택:저는 이강백 선생님의 희곡을 읽으면 너무 지루해 몸이 뒤틀릴 정돕니다. 제가 데뷔하기도 전에 우리는 만났지만 작품을 해보기는 이번(이강백연극제)이 처음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이강백:작가와 연출가의 인생관, 연극관이 꼭 같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연출가가 제 작품을 훌륭히 공연해 주어도 썩 감사하지 않은 동시에 못해도 별 불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공연은 일회적이고 텍스트(희곡)는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윤:희곡은 (이강백씨처럼) 개인의 상상력으로 쓰는 게 아닙니다. 제가 이 말을 했을 때 선생님께선 「그래 너는 세계적 작가가 되라. 나는 계속 메타포(은유, 암유)하겠다」고 대노한 적도 있습니다.

강:저의 글쓰기를 책상물림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다는 것은 작가의 운신의 폭입니다.

윤:연극이란 대중의 정서와 만나야 하고 신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제가 악극을 한다니까(흥행도 하고 예술도 하겠다니까) 「잘 먹고 잘 살아라」고 씹었습니다.

강:나는 천재 이윤택이 왜 그런 짓(악극)을 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이윤택씨는 문학적 연극전통을 공연적 연극으로 큰 흐름을 바꿔 놓은 뛰어난 연출가입니다. 빨리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다면 곧 한국연극계에서 이윤택이 종칠 날이 올 겁니다.

윤:그러나 왜 제 작품만 중극장인 토월극장에 3주(공연기간)를 잡아 놓았을까요. 다른 연출가들은 작은 자유소극장에서 2주씩 하는데. 요는 흥행을 하라, 이윤택이가 연출한다고 하면 항상 사람이 미어 터지니까요.

강:….(속으로는 제작비를 계산하는 듯 끄덕끄덕)

윤:이번 작품 「느낌, 극락처럼」은 처음으로 이윤택이가 한 줄도 고치지 않은 공연이 될 것입니다. 오태석 선생의 「비닐하우스」나 이현화선생의 「산씻김」을 맘대로 고쳤다가 난리났었죠. 「파우스트」도 어떻게 그레첸이 3수하는 술집아르바이트생이냐며 많이 씹혔습니다. 괴테를 고치는 이윤택이지만 이강백만은 안 고칩니다. 다만 중복되는 대사 5분의 1만 빼기로 했습니다. 몸으로 모두 표현되는 걸 말로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강:한 줄도 고치지 않는다고? 그러나 5분의 1을 잘라내는 것은 많이 고치는 게 아니오? 이윤택은 참 이율배반적인 인물입니다. 이윤택의 「파우스트」만큼 훌륭한 「파우스트」가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또 양심이 있다면 「파우스트」를 해서는 안됩니다.

윤:저는 지식인의 연극은 그만 할랍니다. 그보다 잃어버린 형식을 복원하고 우리 민족에 깊이 내재한 정서를 좇아 대중 속으로 파고 들겠습니다. 관객과 함께 할 때 연극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강:나는 「수많은 관객」에 대해 관심을 잃은지 오래입니다. 우리나라 연극의 정신연령은 30대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40∼60대, 노년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연극을 쓰는 것입니다. 탈정치 탈사회적이라고 비판할지 모르지만 인간내면에 눈을 돌리고 싶습니다.<김희원 기자>

◎이강백은 누구인가

47년 전주생인 그는 소아마비를 앓으며 초등학교 시절부터 혼자 책읽기에 빠졌다. 「나는 남과 다르다」는 의식, 획일화에 대한 거부감이 작품에 강하게 나타난다. 일상에서도 대하기 쉽지 않은 고집이 있다.

그는 인물과 사건을 우화적 비유의 껍데기로 이용해 주제를 전달하는 알레고리의 작가, 반사실주의계열 인식중심 작가다. 알레고리가 정치사회적 관심과 결합되면 저항적 작품을 낳았고 아니면 내면적 자유를 탐구하는 작품을 낳았다. 71년부터 쉼없이 28편을 발표했으며 신작 「느낌, 극락같은」에서 구원의 세계관으로 옮겨감을 보여준다.

◎이윤택은 누구인가

52년 부산생인 그는 90년대 중반 독주체제를 굳힌, 최고의 흥행 연출가다. 데뷔 전 예닐곱 가지 직업을 전전했고 시 평론 희곡 TV드라마 시나리오 연출을 섭렵한 「문화게릴라」. 부산일보 편집기자로 재직했던 그는 숙련된 재구성솜씨로 어떤 작품에도 한국의 정치구도를 빗대 풍자할 수 있다. 연극과 생계를 따로 생각할 수 없었기에 관객을 중시하는 감성적 연출가다. 「전통연희형식의 현대적 수용」을 화두로 삼아온 그는 「눈물의 여왕」을 올려 근대극 악극을 현대의 대중극으로 되살려냈다. 더 대중적인 장르인 영화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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