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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때 美 입양 혼혈고아 ‘입양 代母’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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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때 美 입양 혼혈고아 ‘입양 代母’되어 돌아왔다

입력
1998.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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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홀트인터내셔널 이사 낸시 아담스씨입양아로 한국을 떠났던 혼혈고아가 입양아들의 대모가 되어 찾아왔다. 홀트아동복지회가 23, 24일 일산에서 개최한 해외입양기관 협력세미나에 미국 홀트인터내셔널의 이사로 참석한 낸시 아담스(39)씨는 59년 대구에서 태어나 6주만에 고아원에 버려졌던 사람이다.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정옥」이라는 이름과 혼혈아라는 사실뿐이다.

고아원에서 자라던 그는 63년 대구에서 미국인가정에 입양됐다. 계명대 설립자인 선교사 네드 아담스(64년 작고)씨가 40년동안 헌신해온 「제2의 조국」 한국을 떠나면서 손녀딸로 데려간 것이다. 네드씨는 일제때인 1920년대 한국에 들어와 교육·선교사업에 헌신한 한국의 은인. 당시 미국에 살던 양아버지 존(90년 작고) 역시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들이 셋 있는데도 낸시를 입양했던 그는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을 나온 목사로 홀트인터내셔널에서 67∼80년 13년간 회장으로 활동했다.

『아버지는 늘 저를 한국이름 그대로 「옥이」라고 부르며 이북사투리로 한국의 역사와 풍속을 들려주셨다』고 말하는 낸시씨는 아버지 덕분에 매년 미국에서 열린 입양아캠프에 참석했다. 15세때는 한국에 와 친부모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입양고아로서 차별이나 고통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귀국했을 때 상처를 받았다. 15세때 첫 귀국에서 혼혈아에 대한 차별을 실감한 그는 미국에 입양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친부모는 찾지 못했지만 입양전 6개월동안 키워준 위탁부모를 만나고, 자신이 버려졌던 곳에 가보는 것으로 위안을 얻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낸시씨 역시 오리건주립대와 대학원에서 사회사업을 전공하고 홀트인터내셔널에서의 일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도 입양아캠프에서 만난 한국의 혼혈입양아이다. 캘리포니아주 해프문베이시티의 행정담당 부시장인 남편 블레어 킹(41)씨는 4세때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농부가정에 입양됐다. 고아끼리 만난 부부는 2, 6세된 딸의 돌잔치를 한국식으로 치르고 끼니때마다 김치를 빠뜨리지 않고 먹는다. 낸시씨는 세미나에서 『한국정부가 「아기수출국」이라는 오명에 신경쓰기보다 아기들이 따뜻한 가정을 찾을 수 있게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입양아들을 해외에서 한국을 지원하는 인적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동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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