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매스컴이 클린턴의 아프리카 방문 뉴스로 요란하다. 섹스 스캔들로 나라가 뒤집어질 것 같더니 갑자기 웬 아프리카인가, 미국사람들 허풍은 못 말릴 고질이라고 혀를 찰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잘 보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클린턴은 반전(反戰)세대다. 겉 보기로는 정치이념도 분명치 않고 윤리의식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바람둥이 건달 같다. 그러나 그에게는, 미국 보수지배계층을 대표하는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에 저항해, 소수민족이나 여성 같은 사회적 약자의 자유와 권익을 위해 깃발을 들었던 월남전 당시 반체제 청년지식인의 면모가 한구석에 남아 있다.
케네디처럼 아일랜드계 이민인 그는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소수민족 문제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왔다. 지난 22일부터 시작된 아프리카 순방도 오래 전부터 구상한 일이다. 작년 2기 임기에 들어간 직후 흑인 노예제도에 대한 연방정부의 공식 사과를 추진하다가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켜 국론을 분열시킬 게 뭐 있느냐는 반대여론이 대세여서 그만 둔 일이 있다.
하지만 기왕에 미국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방문한 마당에야 독재정권과 종족분쟁에 희생되는 다수 아프리카인의 인권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자면 미국의 과오를 인정하는 의사표시가 없을 수 없는 일이다. 두번째 방문국 우간다에서 클린턴이 노예제도의 죄를 시인하고 『더 큰 잘못은 아프리카를 무시해 온 것』이라고 참회한 배경에는 그런 사연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이번 여행목적이 흑인과의 감상적 화해가 전부는 아니다. 인도주의로 포장된 가방 속에는 경제 실용주의에 눈 뜬 아프리카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계산서가 들어 있다. 카이로에서 희망봉까지 영국기로 덮기를 소원했던 세실 로즈의 장학생다운 클린턴의 야망도 함께 들어 있을지 모른다. 아프리카대륙을 지배하는 팍스아메리카나의 꿈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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