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송이 하양 연분홍 진분홍/300년 넘은 매화목이 있기에 옛 山寺의 자태가 한층 그윽백제의 고찰 선암사(仙巖寺)의 봄소식은 매화향이 터뜨린다. 이맘때쯤 선암사로 발걸음을 하면 매화향이 삼매(三昧)의 세계로 인도한다.
덕지덕지 묻은 세속의 온갖 때가 곱되 결코 화려하지 않은 매화의 자태, 은은하되 결코 속되지 않은 매화의 향기에 말끔하게 씻겨지는 듯 하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조계산 동쪽 기슭에 호젓하게 들어 앉은 선암사는 매화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 이에 견줄만한 곳은 국내 최고인 수령 600년의 매화나무가 있는 산청의 단속사와 장성(전남)의 백양사, 강릉 오죽헌 그리고 변산반도의 내소사 정도이다. 수령 300년 이상된 매화와 더불어 전통사찰의 원형을 거의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량의 모습은 선암사만의 자랑이다.
선암사의 매화가 올해는 유달리 흐드러졌다. 하양 연분홍 분홍 진분홍…, 송이 송이마다 고운 옷을 입고 자태를 뽐내고 있다. 무리지어 핀 백매는 멀리서 보면 배꽃처럼 희디 희고, 울긋불긋한 홍매는 복사꽃처럼 곱다. 봄바람에 실린 매화향이 산문밖을 지나 조계산 계곡을 따라 흘러간다.
백제 성왕 7년(529)에 창건된 선암사는 고색창연하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옛 산사의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오랫동안 불사를 일으키지 못한 것이 오히려 선암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보호하는 계기가 됐다. 세월의 이끼를 이고 있는 기와와 색바랜 단청이 정겹게 느껴진다. 대웅전이나 요사채의 문은 이따금 스님들이 여닫을 때마다 삐걱삐걱 울음소리를 토한다. 그래도 을씨년스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매화가 있는데 그 무엇인들 좋게 보이지 않겠는가.
후원인 무우전(無憂殿)의 매화는 더욱 볼만 하다. 아담한 절집을 낡은 돌담이 무너질듯 에워싸고 그 한 켠에 10여그루의 매화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어스름한 달밤, 무우전 툇마루에 앉아 보는 매화는 가히 환상적이다. 가지는 보이지 않고 하얀 꽃잎들이 돌담 위에 붕 떠 있는 것같다. 이른 새벽녘, 안개 사이로 보이는 모습도 숨이 막힐 것만 같다. 매화나무 뒤로 난 숲길로 한없이 걸어 들어가고만 싶어진다. 모든 근심을 거둬가버린다는 무우전에서 매화삼매경에 빠져보는 기분은 경험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다.
선암사 사적기에 따르면 무우전 뜨락의 매화나무는 300년 전에 심어졌다. 굵은 줄기에는 이끼가 앉았고 건드리면 부러질 것같은 잔 가지도 더 이상 푸른 기운이 감돌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가지 끝에 돋아난 꽃들은 싱싱하기만 하다. 아니, 꼿꼿하다. 작지만 흐트러짐이 없다. 봄눈 내릴 때 가장 먼저 피어 질 때조차 시들지 않고 핀채로 떨어지는 매화답다. 아직 제법 매서운 산바람이 휙 불고 지나가니 작은 꽃잎들이 부르르 몸을 떤다.
그 모습이 추워도 춥다는 소리 하지 않고 의연한 자세를 지키는 선비의 모습을 닮았다.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매화가 사군자중 하나인 까닭을 비로소 알겠다.<선암사=김지영 기자>선암사=김지영>
▷가는길◁
선암사는 서울에서 하룻만에 다녀오기는 빠듯하다. 호남고속도로 광산톨게이트에서 다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승주까지 가는데 6시간 이상 걸린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순천행 버스가 있다. 순천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1번 시내버스나 100번 좌석버스를 타면 선암사까지 30분정도 걸린다.
▷먹거리/잘 곳◁
선암사입구 주차장부근에 민박촌과 장급여관이 있다. 산호산장(0661545234)은 2인1박에 1만5,000원이며 맛좋은 산채정식과 보리밥정식, 비빔밥을 내놓는다. 승주IC 부근의 남일각온천(0661546188)도 좋다. 선암사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낙안읍성에서 황포묵과 더덕 미나리 도라지등 남도산채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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