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의 러시아 정부 개각은 우선 옐친 집권후 최초의 전면개편이라는 점이 충격적이다. 단행시점도 외부에서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때를 택했다. 그 의외성과 불가측성이 국제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옐친이 말하는 개각의 명분은 두가지다. 2000년 대통령선거를 대비한 체제정비와 더 과감하고 신속한 경제개혁의 필요성이 그것이다. 지난 5년간 총리로 재임해 온 체르노미르딘 총리를 해임하고 행정경험이 일천한 키리옌코 에너지장관을 총리서리에 임명한 것은 이같은 필요에 따른 문책인사로 보인다.러시아 경제는 최근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서민생활은 아직 빈곤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백만의 실직노동자가 거리 행상으로 전락한 한편으로 대기업을 헐값에 불하받은 재벌이 부패한 정부관료나 기업형 폭력조직과 결탁해 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세금이 걷히지 않아 연금과 임금체불이 만성화한데다 최근 아시아경제 침체로도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옐친으로서는 부패를 뿌리 뽑을 참신한 개혁인사의 등용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임총리의 국회인준이 장기화할 전망이고 지난해 연말부터 병석을 떠나지 못하는 옐친의 건강도 러시아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러시아는 냉전종식후에도 여전히 핵강국이며 유엔안보리 거부권을 가진 한반도 이해 당사국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우리와 정치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수많은 교민이 있고 우리의 무역·투자규모도 늘고 있다. 러시아정국 불안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 정부는 하루 빨리 안정을 되찾아 이같은 우리의 우려와 국제사회의 불안을 불식해 주기 바란다. 우리 정부도 대사 바꾸는 데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다. 러시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신속한 정보수집과 대책수립이 가능하도록 체계를 갖추는 일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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