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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세상 안바뀐 사람/최규식 정치부장(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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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세상 안바뀐 사람/최규식 정치부장(광화문)

입력
1998.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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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풍에 돛단 격이라 해도 헤쳐 나가기 쉽지 않은 난국이다. 그런데 오히려 역풍이다. 김대중 정부가 맞고 있는 상황이다.세상이 바뀐 것을 실감한다는 소리가 많다. 전 안기부장이 재직시 저지른 정치공작 혐의가 드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정권이 여야간에 교체됐으니 가능한 일이지 과거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세상이 바뀌기 잘했다는 얘기도 흔치 않게 듣는다. 안기부가 역대 선거때마다 야당 후보 떨어뜨리기 공작을 편다는 「심증」은 있었지만 사실이 밝혀진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정권이 여야간에 바뀌지 않았더라도, 윤홍준 기자회견 같은 안기부 정치공작의 진상이 일부나마 드러났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정권교체의 효과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정경 유착, 권언 유착의 고리가 끊어지고 「끼리 끼리 나눠먹기 인사구조」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지 않은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정권교체의 위력을 알게 됐으니 공직자든, 기업가든, 언론인이든 앞으로 정도에서 어긋나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다. 정권이 또 바뀌면 다 드러날 테니까.

그런가 하면 세상이 바뀐 것을 모르는 사람도 아직은 많다. 아니 세상이 바뀐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역풍의 진원이다.

전 안기부 해외조사실장은 「해외공작원 정보보고」라는 문서를 유출했다. 문서를 열람한 국회 정보위원 상당수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신빙성에 의문을 표시했다. 한마디로 「정치권 너희도 죽을 수 있다」고 협박하는 내용이다.

이 문서때문에 북풍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뒤죽박죽이 돼버렸으니 그가 의도한 목적은 일단 달성됐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곰곰 생각해 보자. 세상이 바뀌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 났을까. 아마도 정치권 전체가 안기부, 그리고 안기부를 조종하는 세력의 볼모가 돼 있을 것이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다 자해한 전안기부장은 자신의 배를 가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패장으로서 이 길밖에 더 있겠는가』. 극과 극은 통한다더니 세상이 바뀐 것을 너무도 몰라 바뀐 세상을 더 정확히 꿰뚫어 본 모양이다. 패장이라니. 안기부 정치공작의 목적이 지금 대통령이 돼있는 야당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얘기가 아닌가. 그는 대선을 민의의 축제로 보지 않았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을 궤멸 시켜야 하는 전쟁으로 본 것이다.

여당의 한 중진은 본의 아니게 구안기부 세력의 공작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자신에게 전달된 문서를 분석을 한다며 복사해 갖고 있다가 유출되자 진위도 안밝혀진 내용을 확인까지 해줬다. 그 역시 바뀐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옛날 야당시절 처럼「한 건」하려고 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

한나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여권을 몰아 붙이고 있다. 문서에 한나라당 보다 여당 의원이 훨씬 많이 거론된 것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야당으로서 취할 수 있는 공세라 할 수 있다. 진상 규명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구 안기부가 왜 북풍공작을 했느냐이다. DJ를 대통령 만들려고?

우리 국민은 건망증이 심하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만은 잊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야만 북풍공작의 실체도 바로 볼 수 있다. 순간적인 역풍과 대세의 흐름을 구분 못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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