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조사중 자해를 한 권영해(權寧海) 전 안기부장이 변호사와 만나 『「패장」으로서 이 길밖에 더 길이 있겠느냐』며 자해동기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패장」이란 말은 듣기에 따라 여러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권씨가 데리고 있던 직원들이 북풍조작사건에 연루돼 사법처리됐고 조직의 책임자인 그역시 구속을 면할 수 없는 절박한 처지를 단순히 표현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해석하더라도 관계당국의 조사과정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그의 행적을 생각하면 「패장」이라는 표현은 이해하기 힘들다.
권씨는 육사를 졸업하고 장군까지 진급한 군인으로서 누구보다 국가의식에 투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더구나 그는 국방장관과 국가정보기관의 최고책임자까지 역임했다. 상식적으로 보아 권씨가 상대해야 할 적은 북한을 비롯해 우리나라 국익을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조직이다.
그러나 관계당국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권씨는 안기부장으로서 조직을 동원해 특정 대선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한 공작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고 있다. 이같은 사실을 두고볼 때 권씨의 적은 자기와 이념을 달리하는 특정 정치인이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그 정치인을 낙선시키기 위한 사활을 건 전쟁을 벌였으나 패배했고 그래서 지금 검찰에 소환되는 등 치욕스러운 「패장」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안기부가 선거때마다 해온 북풍공작의 추한 모습이 하나하나 드러나자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더군다나 국가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였던 사람이 일본의 무사(사무라이)처럼 할복자해소동을 벌인데 대해 동정보다는 비난 여론이 높다. 권씨는 지금이라도 「착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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