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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응용생물학과 교수 김혜영(여성의 새 길을 연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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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응용생물학과 교수 김혜영(여성의 새 길을 연다:4)

입력
1998.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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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세포유전학 도입 국내 육종학 새길 연 감자 박사/여고시절 원예반에서 흙의 매력에 빠져/감자를 화두로 걸어온 한길 30년/76년 반수체기법·91년 세포융합 국내 첫 성공/‘병에 강한 감자 유전자’ 개발 쉼없는 도전농촌이라곤 가본 적이 없는 서울내기 여고생은 우연히 원예반에 들었다가 농사에 빠져 버렸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택한 것이 농대. 흙을 만지면서 공부하는 것이 좋아 미국유학까지 갔다. 그 곳에서 평생 매달려야 할 과제를 만났다. 감자. 30여년간 오롯이 이 화두를 안고 살아왔다.

「감자박사」 김혜영(58·동국대 생명자원과학대 응용생물학과) 교수. 감자 품종 개량을 위해 필요한 세포 융합기술을 국내에서 처음 성공했으며 교배할때 염색체수를 줄이는 반수체기법을 국내 첫 도입한 여성육종학자이다. 김교수는 감자품종 개량을 위해 필요한 기초단계이자 육종학의 꽃인 세포유전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우리나라 육종학은 첨단 생물학 기술이 필요한 세포유전학 분야에서는 미국 유럽에 비해 그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 첨단 기술을 도입해 한국에서 이를 적용하는데 김교수는 큰 역할을 했다.

『감자는 매력덩어리』라는 김교수의 감자예찬은 끝이 없다. 『벼는 종자로만 번식하지만 감자는 영양번식도 할 수 있어 번식력이 뛰어나다. 게다가 비타민 필수아미노산 무기질등 영양소가 고루 들어 있어 주식으로 좋다』 하지만 감자는 병에 약한 것이 단점. 김교수는 『80년 씨감자에 병이 걸려 거의 전량 폐기하고 외국에서 수입한 적이 있다』며 『감자 연구의 궁극적 목적도 병에 강한 유전자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김교수는 서울대 농대 농학과,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는 감자를 만나지 못했다. 감자에 눈뜬 것은 65년 미국 퍼듀대학에 유학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지도교수가 감자 연구자여서 그 영향을 받았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김교수는 70년 미국 위스컨신대학 감자수집보관센터에서 연구원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감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김교수가 7년간 근무한 미국 중부지방의 위스컨신대학은 페루 국제감자연구소(CIP)와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감자 연구의 중심지. 김교수는 『70년대초 미국 감자학회의 여성과학자는 나를 포함해 2명밖에 안될 정도로 여성에게는 이 분야가 불모지였다』고 말한다. 이 곳에서 김교수는 첫 학문적 성공을 거둔다. 염색체수가 정상보다 1∼2개 많은 감자를 이수체라고 하는데 이수체의 염색체 종류를 알아낸 것이다. 이 논문은 75년 미국 식물학회지에 실렸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열린 감자학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게 김교수의 회상. 또 그는 감자의 유전자를 반으로 나눈 새로운 개체를 만드는 반수체기술도 76년께 우리나라에 소개했다. 반수체기술은 감자품종 개량을 위해 교배를 할 때 꼭 필요한 기술이다. 농촌진흥청에 이 기술을 전수해 씨감자보다 훨씬 크기가 작은 품종인 진정종자를 개발했다.

77년 귀국후 동국대에 자리잡고 후학을 길렀던 김교수는 91년 미국 위스컨신대학에 교환교수로 가서 다시 연구작업에 매달렸다. 쉰살이 넘은 나이에 실험기구를 직접 닦으면서 새로운 유전학기술인 「세포융합」에 도전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이 기술을 성공시킨 사람이 없었다.

감자품종 개량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은 교배와 융합. 교배는 방법이 쉽지만 원하는 유전자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고 융합은 원하는 유전자를 포함시킬 수 있는 대신 성공이 어렵다. 식물에서만 가능한 유전학 기술인 세포융합은 부모 세대의 유전자 모두를 다음 세대가 받는 것. 따라서 병에 강한 감자를 세포 융합시키면 이 성질을 잃어버리지 않고 가질 수 있어 보다 쉽게 품종 개량을 할 수 있다. 교환교수 9개월만인 12월 크리스마스 이브에 세포융합에 성공한 김교수는 『이때가 연구 인생중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귀국해서는 농촌진흥청의 겸직연구관으로 이 기술을 활용해 감자품종 개량작업에 참여했다.

90년대 이후 김교수는 감자 반수체와 병에 강한 야생종의 교배·융합으로 새로운 유전자를 개발하는 논문을 매년 2∼3건씩 발표하는등 왕성한 학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연구분야는 병에 강한 유전자를 선발하는 것. 『30여년간의 연구로도 아직 내가 이름 붙인 씨감자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육종학은 당대에 결실을 보기 힘들다』는 김교수는 『나중에라도 내가 연구한 유전학 기술이 사용될 수 있다면 영광일 것』이라고 말한다.

연구활동에 비해 상복은 많지 않아 95년 동국대에서 자연과학분야 학술상을 받은 것이 유일하다. 원로 교육학자인 김은우(82)씨가 부친이며 김인회(60·연세대 교육학과) 교수가 오빠, 부군은 이광우(61·한양대 지구해양학과) 교수, 올케는 최옥선(57·서울간호전문대) 교수로 학자집안. 초등학생때 연구원, 교수생활로 바쁜 엄마를 보며 『대학교수가 되지 않겠다』고 말하던 딸(26)과 아들(29)은 그보다 더 바쁜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다.<노향란 기자>

□약력

58년 이화여고 졸

62년 서울대 농학과 졸

64년 서울대농대 대학원 졸

70년 미국 퍼듀대 원예학과 박사과정 졸

70∼76년 미국 위스컨신대 원예학과 박사후과정 연구원

77년 동국대 생명자원과학대 조교수

91∼92년 미국 위스컨신대 식물병리학과 교환교수

91∼95년 농진청 원예시험장 겸직연구관

95∼97년 농진청 고령지농업시험장 겸직연구관

현재 동국대 응용생물학과 교수

한국감자연구회 부회장

한국육종학회·

한국원예학회·

한국식물조직배양학회 이사

◎국내 육종학 현황/전통육종학은 세계적 수준

우리나라 육종학도 전통적인 방식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일반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벼. 60년대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가 개발한 기적의 쌀 IR8을 들여와 국내에서 다른 품종과 교배시킨 통일벼를 첫 생산한 후 추운 날씨에 강하고 맛이 더 좋은 일품벼등 자체 기술로 다양한 신품종을 개발했다.

감자 역시 육종학분야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가 씨감자 생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든 종자관리소는 페루 국제감자연구소로부터 씨감자 생산에 관한 훈련과정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정도다. 또 씨감자가 너무 커 운반이 힘든 점을 감안해 엄지손가락만한 진정(眞正)종자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국내서 개발, 인도등지에 전수했다. 씨감자에 병이 들지 않도록 균이 없는 배지에서 배양하는 기술 역시 세계 최고. 생명과학연구소 정혁(43)박사가 이 분야의 권위자다.

한국육종학회 총무 윤진영(52) 박사는 『무 배추 고추도 일본에서 열리는 종자콘테스트에서 5위내에 2∼3종 이상이 매년 올라가는등 품질이 뛰어나 지난해 외국에 1,200만달러어치를 수출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여러 종을 교배해 품종을 개량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육종학은 세계적 수준인 반면 분자생물학과 같은 첨단 유전학기술을 활용한 분야에서는 아직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김혜영교수는 지적한다.<노향란 기자>

◎국내 여성 농학자들/실험실연구 확대… 진출늘어

농학교육의 역사는 90년이 되지만 여성농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김혜영 교수와 원예학의 방광자(54·상명대) 유순남(50·효성가톨릭대) 교수, 식물육종학의 윤화모(50·배재대), 화훼분야의 정향영(42·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화훼과) 박사 등이 대표적 여성농학자들이다. 한국육종학회 윤진영 박사에 따르면 회원 800여명중 여성은 100여명. 특히 여성농학자들은 원예학 생물학등에 몰려 있다. 과거의 농학은 농사를 짓는 현장실습을 해야 하므로 여성이 적었다. 그러나 최근 실험실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분자생물학 분야가 확대되면서 여성농학자도 늘어나고 있다.

김교수의 대학후배인 윤교수는 무 배추 육종전문가로 배추 「삼복」「만하」 가을무 「삼계」 평지 여름무 「원교108」등이 그의 작품이다. 유교수는 고려대 농대와 대학원에서 원예학을 전공했으며 화훼 유전 육종학이 전문이다.

감자분야만 보면 농촌진흥청 산하 고령지농업시험장 감자과의 연구원 19명중여성이 3명. 겸직연구관 제도로 김교수가 91∼97년 감자 품종개량에 참여한 것이 여성으로는 처음이자 유일했다. 한국감자연구회(회장 한병희)는 전체회원 270여명중 여성이 10여명이다. 서울대의 경우 김교수가 58년 입학할 당시 한 학년에 3명뿐이었던 여학생이 97년 239명으로 늘어났다. 전체학생 2,089명의 11%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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