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표정으로 대화하던 안기부의 중간간부들이 자신들쪽으로 다가오는 누군가를 발견하고선 돌연 화제를 바꾸는가 싶더니 곧 아예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가시권에 들어온 사람은 새 정부가 임명한 고위인사였다. 중간간부중 한 명은 그 고위직과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수인사를 나누었다> <한 수뇌부 인사가 기자들에게 안기부문서가 원본에서 짜깁기된 것임을 강조한 뒤 자리를 떴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한 안기부 직원이 잠시후에 시큰둥하게 말했다. 『원본이 있긴 있는 모양이지』>
지난주 국회 정보위 주변에서 벌어졌던 일들이다. 새 정부 출범후 한 달이 됐는데도 여전히 크게 흔들리고 있는 안기부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안기부가 다른 어느 정부 기관보다도 정권교체의 영향을 크게 받으리라는 점은 이미 충분히 예견됐던 사실이다. 안기부가 전통적으로 「반(反)DJ의 본산」으로 인식됐던 점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새 정부는 이런 시선을 의식, 안기부 개혁을 조기에 마무리지음으로써 최고정보기관으로서의 제자리찾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일련의 북풍파문이 이 구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안기부 고위관계자가 『직원들이 도대체 일을 하지 않는다. 전혀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할 정도로 북풍은 안기부를 사실상 「마비」시켰다는 관측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의식, 여권은 권영해(權寧海) 전 안기부장의 자해사건에 구애받지 않고 일단 그의 사법처리로 안기부에 불고 있는 「외풍(外風)」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이어 이미 확정해 놓은 조직개편·인원정리안을 실행, 안기부를 조기에 안정시켜 본궤도에 올려놓는다는 계획이지만 여전히 구정권의 그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안기부맨」들이 이에 순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신효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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