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표출 최후수단 선택/편지사건 등 수사 확대 차단 겨냥한듯/‘자살의도’ ‘계산된 소동’ 여부는 불분명안기부와 검찰의 북풍수사가 예상치 않은 권영해(權寧海) 전 안기부장의 자해기도라는 암초를 만나 흔들거리게 됐다. 권씨의 구속으로 북풍수사를 조기 매듭지으려던 당국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으며, 정치권에서는 북풍을 둘러싼 공방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검찰은 일단 권씨를 상대로 대선 당시 윤홍준(尹泓俊·구속)씨에게 김대중(金大中)후보를 비방하는 기자회견을 지시한 혐의사실을 모두 자백받았기 때문에 권씨에 대한 사법처리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구속영장 청구 시기는 권씨의 회복상태를 지켜보고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권씨가 윤씨 사건 관련 부분을 진술한 뒤 자해소동을 벌인 것으로 보아 권씨를 상대로 밀입북한 오익제(吳益濟)씨 편지사건 등 북풍전반에 대한 개입혐의를 조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권씨의 자해기도 동기가 가장 큰 의문으로 남는다. 조사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인지, 사전 계획에 의한 것인지, 또 정말 자살을 하려한 것인지, 북풍수사에 반발해 치밀한 계산하에 벌인 소동인지 분명치 않다.
권씨는 이날 오후 병원에서 변호사와 면담하면서 가방밑에 있던 문구용 칼을 발견하고 몸에 숨겼다가 자살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부도 아닌 감시의 눈이 많은 검찰청 조사실에서, 손목 동맥 등 치명적인 부위가 아닌 배를 가해한 점 등으로 볼 때 실제로 자살을 염두에 두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결국 권씨는 자해소동을 일으켜 북풍수사에 대한 자신의 불만을 표출한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권을 상대로 한 「물밑 담판」이 무위로 끝나자 최후의 저항수단으로 자해를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도 『증거가 확실한 윤씨 사건 이외의 다른 북풍 사건 수사는 피하겠다는 생각에서 이런 방법을 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무튼 권씨의 자해로 검찰 수사는 당장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병원측이 밝힌 권씨의 회복기간인 10∼14일동안에는 사실상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소동에서 보듯이 권씨가 사정당국의 수사에 적극 협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여권이 권씨의 행동을 수구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의 하나라고 판단할 경우 북풍 수사는 오히려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도 있다. 권씨가 여권을 상대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전격 소환돼 결국 감옥에 들어갈 운명에 처한 것처럼 이번 소동이 수구세력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김상철 기자>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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