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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씨의 선택(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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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씨의 선택(사설)

입력
1998.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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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北風) 의혹의 배후 책임자로 검찰 조사를 받던 권영해(權寧海) 전안기부장의 자해기도는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다. 자해를 기도한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정보기관의 총수였던 그가 조사과정에서, 그것도 범법사실을 밝힌 후 자해를 기도 했다는 것은 국가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그가 자해를 시도한 이유는 여러가지로 짐작할 수 있다. 소극적 성격에 검찰의 압박수사를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고, 검찰 조사실 특유의 분위기가 심리적 모멸감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체념에서 나온 자포자기일 수도 있다. 그가 검찰에 소환되기전 정부측에 대해 위협과 협상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도 여러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의 사적인 자해기도 이유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다. 정부는 그의 자해소동이 불러일으킨 의혹과 폭발력을 최소화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의 자해기도로 북풍수사는 일단 멈출 수 밖에 없다. 검찰수사가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 북풍정국은 또 한차례 격동이 불가피하다. 당장 야당은 그의 자해기도를 강압수사탓으로 돌리면서 대여(對與)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여권도 예상치 못한 악재에 당황하고 있다.

안기부장이 대통령선거에서 야당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북풍을 조작하고, 조사를 받다가 자해를 기도했다는 것은 이미 국가의 대외적 위신에 먹칠을 한 사건이다. 그는 안기부장으로서는 물론 안기부장에서 물러나 조사를 받는 입장에서도 비열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정보기관의 총수로 그런 잘못을 저질렀다면 국민앞에 깊이 사죄한 후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는 것이 공인으로서의 도리다. 죄를 뉘우쳐 자살하려 했다 한들 하필 검찰에서 할 이유가 무엇인가.

정부의 대처에도 문제가 있었다. 국가 정보기관의 불법혐의 조사는 모든 국가가 철저하고 신중하면서도 극비리에 진행하는게 원칙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공개적으로 떠들면서 검찰소환까지 공개했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해 국민이 불안해 하는 이유다.

권영해씨의 자해소동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잘못이 있으면 이를 사실대로 밝히고 처벌을 감내하는 것만이 그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이다. 자신과 같은 안기부장이 이 땅에 다시는 존재하지 않도록, 안기부가 다시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공작과 조작으로 얼룩진 안기부가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썩은 환부를 도려내는 개혁작업에 자신을 던져 협력하는 것이 그가 취할 도리다. 자해소동으로 제2 제3의 의혹을 부를 셈인가. 이제라도 공인다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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