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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수사­재구성한 權씨 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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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수사­재구성한 權씨 자해

입력
1998.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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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용 칼로 3차례 배그어/20일 저녁 9시­가방 성경책 꺼낼때 칼도 숨겨/21일 4시40분­수사관 1명 남자 “용변보고싶다”.자해후 변기 물뚜껑 내리치고 머리 벽에 들이박으며 몸부림/5시40분­응급실 도착 긴급수혈후 수술권영해(權寧海) 전안기부장의 자해는 13시간여의 마라톤 조사가 마무리된 직후 이루어졌다. 권씨는 검찰에 자진출두한데다 철야조사에서도 윤홍준(尹泓俊)씨의 기자회견공작 등에 개입한 사실을 순순히 자백한 터여서 21일 새벽의 돌연한 자해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출두◁

권씨는 가벼운 정장차림으로 20일 오후 3시45분께 서울지검 남부지청 황병돈(黃丙敦) 검사 등과 함께 검찰관용차 편으로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청사에 도착했다. 수사팀은 권씨가 기자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청사 뒤편 마약반출입구를 통해 11층 특별조사실로 직행했다.

수사팀이 권씨를 안내한 곳은 1145호. 11층에 있는 8개의 특별조사실중 가장 시설이 잘된 「특급」 조사실이다. 수사팀은 권씨가 국가정보기관의 전직 최고책임자임을 감안, 정밀 몸수색 대신 들고온 가죽가방을 한번 열어 성경과 의약품, 옷가지 등의 내용물만 간단하게 확인했다.

▷조사◁

조사는 신부장검사의 입회하에 황병돈, 이상호(李相虎) 검사가 담당하고 수사관 6명이 방을 지키거나 옆방의 수사캠프를 오가며 실무를 도왔다.

권씨는 이대성(李大成·56·구속) 전해외조사실장을 통해 윤홍준씨에게 기자회견 대가로 25만달러를 주도록 지시한 사실 등을 순순히 진술, 조사는 비교적 빠르게 진행됐다. 범행동기와 북풍공작 관련 여부에 대해서는 국가기밀임을 들어 답변을 거부, 실랑이도 있었지만 고성이 오갈 정도는 아니었다. 수사팀도 영장청구에 필요한 혐의사실은 대체로 확보한 터여서 심하게 다그치지 않았다.

▷자해◁

밤 9시쯤 권씨는 『잠시 예배를 볼 수 있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요청, 신부장검사 등이 자리를 뜨면서 수사관 1명을 남겼다.

권씨가 가방을 열어 성경책을 꺼내려 할때 바닥의 잡동사니 틈에서 뜻밖에 「반짝」하는 것이 눈에 띠었다. 길이 10㎝ 가량의 칼집없는 문구용 칼(커터·cutter)이었다. 성경책과 함께 칼을 집어든뒤 옆자리 수사관의 시선이 잠깐 다른 곳으로 비켜간 틈을 타 얼른 상의 안주머니에 감췄다. 권씨는 이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10여분간 성경봉독을 한뒤 주기도문을 외웠다. 수사관은 독실한 기독교신자다운 권씨의 진지한 모습에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았다.

21일 새벽 4시께 조사가 마무리되자 권씨는 조서를 처음부터 훑어보며 부하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대목을 짚어가며 자구수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조서를 다시 읽는 동안 애써 자제하고 있던 「분노와 억울함」이 새삼 가슴속에 치밀어 올랐다.

새벽 4시40분. 모든 조사절차가 끝난뒤 신부장검사와 황검사는 결과보고와 영장서류 준비를 위해 옆방으로 건너갔고 이검사는 컴퓨터에 입력시킨 조사내용을 프린터로 뽑기 위해 12층의 다른 검사실로 올라갔다.

방안에 수사관 1명만 남게 되자 권씨는 『용변이 급하다』며 조사실 안의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권씨는 곧바로 주머니 속에서 칼을 꺼내 배 윗부분을 30㎝ 가량 그었다. 그러나 상처가 깊지 않자 다시 아랫배를 두번 깊숙히 힘주어 그었다. 길이 25, 20㎝ 깊이 4∼5㎝의 깊은 상처가 나면서 극심한 통증이 엄습했다. 고통으로 흥분상태에 빠진 권씨는 한손으로 배를 움켜쥔채 도기(陶器)로 된 변기의 물통뚜껑을 세면대에 내리쳐 깨뜨리고 머리로 벽을 들이받으며 비틀거렸다.

화장실앞에서 지키던 수사관이 뭔가 깨지는 소리에 놀라 뛰어들었을 때는 이미 화장실 안이 피바다로 변한 뒤였다. 권씨의 머리와 온 몸에도 선혈이 낭자했다. 수사관은 완강히 버티는 권씨를 간신히 실내로 끌어냈다.

▷후송◁

곧이어 연락을 받은 신부장이 사색이 되어 방으로 뛰어들어 왔고 뒤이어 들이닥친 검사와 수사관들도 급한대로 현장조치와 보고를 한 뒤 새벽 5시5분 가장 가까운 강남성모병원에 앰뷸런스를 요청했다.

청사 뒷문을 통해 앰뷸런스에 실린 권씨가 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5시40분께. 서둘러 응급조치를 했는데도 워낙 피를 많이 흘린 탓에 혈압이 80∼40㎜HG로 떨어져 2차례 긴급수혈을 받은 뒤에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안정을 되찾은 권씨는 오전 6시께 검찰의 연락을 받고 달려온 부인 김효순(金孝淳·57)씨와 중환자실에서 2∼3분간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권씨는 눈물을 흘리는 부인에게 조용히 뭔가를 당부했다. 상오 8시10분 권씨는 수술실로 옮겨져 가족들의 입회하에 1시간40여분동안 수술을 받았다.<이태희 기자>

◎상처 정도는/出血 심했지만 장기 이상없어… 병원측 “2주內 회복할듯”

권영해(權寧海) 전안기부장을 치료한 강남성모병원측은 상처의 부작용에 따른 합병증만 없다면 10∼14일내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권씨의 수술을 집도한 가톨릭의대 의과학연구원장 김인철(金仁哲·60·외과) 교수는 『하복부에 난 상처 3곳중 특히 길이 20㎝ 되는 부위는 복부동맥이 끊겨 피를 많이 흘렸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라고 공식 발표했다.

김교수에 따르면 권씨는 복부 3곳의 자상(刺傷)과 머리에 찢어진 상처 두군데 등 모두 5군데에 상처를 입었다. 복부에는 윗배에 길이 30㎝, 아랫배에 각각 길이 20㎝와 25㎝ 가량 횡으로 예리한 상처가 났으며 이중 20㎝짜리 부위의 복부동맥이 끊어지고 복막이 찢어졌으나 다행히 장기관에는 이상이 없었다. 또 권씨가 변기를 깨며 소란을 피우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머리부위의 5㎝, 2㎝ 가량 상처도 큰 문제는 없다는 것이 김교수의 설명이다.

권씨는 이날 오전 5시40분께 강남성모병원에 도착, 응급처치를 받은뒤 오전 8시10분께부터 상처부위에 대한 봉합 등 수술을 마치고 의식을 회복한 상태에서 회복실로 옮겨졌다.

김교수는 『권씨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맥박이 잡히지 않고 혈압이 80/40㎜HG정도로 위험했으나 수혈 등 응급조치를 취해 고비를 넘겼다』며 『혈액을 모두 5병 수혈했으나 어려운 수술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권씨는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도 부인(58)과 2∼3분 대화를 나누었으며 수술후에는 변호인인 오제도(吳制道) 변호사와 회복실에서 면회를 했다.<정진황·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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