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시녀’서 ‘범죄전쟁’ 첨병으로/KGB 후신… 인원 8만명/정치공작 등 악명씻고 마피아·경제범색출 주임무올해초 러시아 로스토프주 샤흐트이시에 있는 고풍스런 한 레스토랑. 검은 양복차림의 건장한 젊은이들이 말없이 흐르는 돈강을 바라보며 앉아있다. 긴 탁자 가운데 정좌한 구레나룻 얼굴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그 순간,총성이 울리며 복면을 한 특수요원들이 레스토랑을 덮쳤다.
한적한 식당에서 다른 조직과의 접선 겸 신년 하례식을 가지려던 러시아 최대 범죄조직중의 하나인 「하산」파는 이렇게 연방보안국(FSB·KGB의 후신)에 의해 일망타진됐다. 체포된 거물만도 수염 덕에 「하산할아버지」라고 불려 온 「대부」 아슬란 우사얀을 비롯해 지역 책임자급 20여명. 세계 첩보계를 주름잡던 FSB가 조직범죄 척결에 본격적으로 나선 지 수개월만에 올린 첫 개가였다.
「상사의 명령은 무조건 믿고 따른다」는 KGB수칙 제1항이 구소련의 붕괴로 무너져버린 오늘날, FSB는 달라진 환경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다. 그것은 무장 범죄조직으로부터 민주체제와 시장경제를 보호하는 것이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FSB는 그 총대를 멨다.
FSB의 전신인 KGB는 1917년 10월 공산혁명후 반혁명분자를 색출하기 위해 태어났다. 무작위 도청과 감시, 정치공작, 강제수용소 운영, 반체제인사 감시 등은 1인 공산독재 체제의 수호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존재의 근간이었던 공산체제가 무너지면서 KGB는 변혁의 급류에 휘말렸다. 요원도 40여만명에서 8만여명으로 줄었고 권한도 축소됐다.
모든 경제활동이 범죄조직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현 상황에서 FSB의 존재는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미국의 연방수사국(FBI)과 같은 전문적인 대범죄조직이 없는 러시아로서는 FSB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FSB와 범죄조직간의 커넥션이 여전하다고 말한다. 모스크바의 한 사업가는 『기업의 크뤼샤(보호막)를 자처하는 마피아중에서 가장 막강한 것은 역시 FSB를 업고 있는 세력』이라고 단정했다. 크렘린이 내려다 보이는 루비앙카 FSB본부내에서 한 사람은 범죄집단을 때려잡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옆자리의 동료는 범죄조직의 후원자로 나선다는 이야기다.
FSB는 조직범죄 퇴치 외에 혼란을 틈타 러시아의 핵, 우주항공, 고급 군사기술을 빼내려는 「산업스파이」를 찾아내는 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미국과 유럽 비즈니스맨의 간첩혐의 체포가 그 결과다.
한때 자국에 진출한 외국기업을 감시해 온 정보기관이 거꾸로 범죄조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게 된 역사의 아니러니, 이것이 FSB 변신의 상징이다.<이진희 기자>이진희>
◎工作 부메랑에 사라진 세계 정보기관 총수들/FBI 그레이워터게이트 서류조작 들통/FBI 세션스비리보고서로 대통령과 대립/FSB 바르수코프정치라이벌 제거시도 좌절
달콤한 만큼 치명적인 독(毒)이 「정보」라고 했던가. 「음지」에서 한 손에 엄청난 기밀을 거머쥐고 최고 권력의 비호 아래 수많은 대내외 공작을 주도하는 정보기관장들. 그러나 「북풍공작」에서 보듯, 그들이 거꾸로 자신의 공작에 걸려 희생물로 전락한 예는 정보의 세계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전설적 FBI국장인 에드거 후버의 뒤를 이어 72년 5월 FBI국장서리에 취임한 패트릭 그레이. 그는 정치사찰로 악명이 높았던 후버시대의 악습을 타파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73년 워터게이트사건 당시 도청 공모자인 하워드 헌트 전 백악관보좌관의 관련 서류를 임의 소각, 닉슨 대통령을 위해 사건 은폐를 기도했다. 국익에 앞서 권력에 봉사한 그는 결국 임기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공작정치의 불명예를 쓰고 사임해야 했다.
반면 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윌리엄 세션스 FBI국장은 신임 최고 권력자의 「견제」로 불운을 맞았다고 볼 수 있는 경우. 세션스 국장은 부시 정권 말기인 93년초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 빌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에 맞춰 자신의 공직자 윤리규정 위반 혐의를 적시한 보고서를 발표하자 격렬히 저항했다. 그는 『법무부측이 FBI에 대한 「외풍」에 저항하는 나를 제거하기 위해 엉터리 비리 보고서를 만들었다』며 클린턴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면담조차 거절하고 FBI 70년 사상 처음으로 그를 일방 해임해버렸다.
96년 러시아 대선 당시 옐친 대통령에 의해 축출된 알렉산드르 코르자코프 경호실장(현 하원의원)과 미하일 바르수코프 FSB국장은 최고 권력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권력 연장을 위한 정치공작을 벌이려다 실패했다. 코르자코프 등은 옐친 대통령이 선거승리를 위해 알렉산드르 레베드를 중용하자, 레베드를 견제하기 위해 레베드측 선거운동원들의 금품살포 폭로공작을 벌였다. 그러나 폭로 하루 뒤 어처구니 없는 공작에 분노한 옐친 대통령에 의해 전격 축출당하는 말로를 맞았다.<장인철 기자>장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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