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북풍 피해자는 누구인가/김정원 변호사(한국시론)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북풍 피해자는 누구인가/김정원 변호사(한국시론)

입력
1998.03.20 00:00
0 0

◎“국가안보기관이 정권안보기구 역할 최대 피해자는 다름아닌 우리국민”요즘 세간의 최대 뉴스메이커는 안기부와 국회다. 음지의 정부기관과 양지의 국민대표기관이 나란히 서있다. 김종필 총리 인준문제가 「북풍」으로 이어지더니 국회의원 도박사건이 돌출한데 이어, 이번에는 안기부 전 해외조사실장의 공작문서 유출 파문까지 겹쳐 연일 정국을 혼돈속에 빠뜨리고 있다.

그 가운데서 북풍은 국가존립을 위협하는 엄중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정치보복이나 세 겨루기 차원에서 다뤄지는 느낌이 없지 않다.

이번 98년판 북풍의 진원지는 97년 선거정국이다. 현재진행형이라기 보다는 괴문서 노출을 계기로 과거에 일어난 일을 되짚어 들추어낸 사건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지난해에는 북한 관련 사건이 넘쳐난 한 해였다. 겨울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2월부터 북한 주체사상의 거두인 황장엽씨가 망명해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중간 중간에 민간인의 망명소식이 간간이 이어지다가 8월에는 천도교 교령까지 지낸 오익제씨가 역으로 평양행 비행기를 탔다. 또 10월에는 남파된 부부간첩이 생포되더니, 사회학계의 원로인 고영복교수가 체포되었다. 황장엽씨가 넘어왔을 때는 황장엽 리스트가 나돌았고, 고영복씨가 구속된 뒤에는 고영복 리스트가 입에 오르내렸다. 하나같이 우리사회의 최고위급 인사가 북한과 연루되어 있다는 섬뜩한 해설이 붙어 있었다. 이만하면 북풍이 일년 내내 거세게 불어댄 셈이다.

이 태풍 속에서 15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고 IMF구제금융이 도입되고, 우리의 반도체기술이 대만으로 흘러 들어갔다.

안기부의 이런 저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야 정권교체가 이뤄져, 안기부는 야당의 사조직보다 기능이 떨어지는, 정권안보기구라는 평을 듣게 되었다. 문제의 초점이 전직 안기부장선까지 확대되었고 대북커넥션까지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 있다. 북풍의 진짜 피해자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혹자는 지난 세월 혹독한 음해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김대중 대통령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또 혹자는 정권이 바뀌어 어제의 공신이 오늘의 역도로 전락한 한나라당 실세들이라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이는 다름아닌 우리 국민들이다.

안기부는 엄청난 예산을 쓰는 국가기관이고, 남북이 엄연한 대치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 밥그릇싸움에 편을 들면서 국민의 안녕을 방기했다. 북한의 도발문제만 나오면 저절로 움츠러드는 국민들의 약점을 이용한 것이다. 그것도 국가가 부도위기에까지 놓인 상황에서 말이다. 그런데 눈을 씻고 살펴보아도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이가 없다.

안기부의 기밀정보가 리얼타임으로 야당의 사조직으로 넘어하고 북한과 비밀거래를 할 정도라면,제2,제3의 조직이나 국가로 정보가 넘어가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는가. 국가의 정보기관이 보안에 구멍이 뚫린채, 정권에 끌려다닌 것도 모자라, 핵심간부에 의해 조직이나 운영체계 주요공작원의 활동내역까지 낱낱이 알려져서야 정보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이 경우 우리는 IMF경제위기보다 더 혹독한 국가안보 부재상황을 겪게될 지도 모른다. 이제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게임은 사라져야 한다.

안기부가 한 정권이 아닌 국가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모든 기능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리사욕을 버려야 한다. 정치는 하나의 도구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북풍을 막아야할 안기부가 더이상 북풍조작혐의로 화젯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기에는 IMF구제금융으로 상징되는 경제위기와 세계화,휴전상태라는 발등의 불이 너무 뜨겁지 아니한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