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性愛/늘 움츠러 들던 그들이/PC통신동호회·인터넷을 통해 공개활동에 나서고 있다사회의 곱지않은 시선에 늘 숨어들기만 하는 동성애자.
이들이 어두운 장막을 훌훌 털어내고 있다. 더이상 감추거나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외부노출을 꺼리던 동성애자들이 최근 PC통신에 동호회를 설립, 자신들의 모습을 당당하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동성애 네티즌들은 동성애자인권운동협의회(동인협)라는 단체를 만들어 거리시위에도 나섰다. 사이버세계에 성(性)의 반란이 일고있다.
동성애는 아직도 어두운 그늘속의 존재로 치부하는 게 현실. 변태성욕자,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증)환자, 성도착증환자, 예비 범죄집단 등 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온 그들이 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이들은 이제 더이상 외진 곳에 웅크리고 있지 않는다.
이들을 밝은 세상밖으로 이끌어낸 것은 다름아닌 PC통신.
동성애자 동호회가 가장 먼저 등장한 곳은 나우누리. 96년 1월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레인보우」(go queer)가 개설돼 지금까지 약 50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하이텔에도 96년 2월 「또 하나의 사랑」(go queer)이란 소모임이 생겨 2월께 동호회로 첫발을 내디뎠다. 회원수는 320명.
천리안의 「퀴어넷」(go society.4)은 PC통신 모임으로는 가장 빠른 95년 11월 개설된 동호회. 이들은 지난달 메뉴를 모두 바꾸고 비회원도 참여할 수 있도록 대화방을 개방했다.
유니텔에도 2월말 「거치른 세상의 아름다운 사람들」(go queer)이란 동호회가 등장, 4대 PC통신은 이제 동성애 네티즌들의 주활동무대가 되고있다.
최근에는 인터넷에도 진출, 연세대 동성애자단체인 「컴투게더」가 홈페이지(inote.com/∼cometo)를 제작했고 「레인보우」, 「또 하나의 사랑」도 홈페이지를 만들고 있다.
동호회가 개설되자 동성애자들보다 일반인들이 더 많이 찾아왔다.
호기심어린 단순 방문이 아니라 게시판을 통해 협박을 하기 위해서였다.
하이텔 「또 하나의 사랑」 모임결성에 참여한 동호회 운영자 황의숙(23)씨는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에이즈를 퍼뜨리는 더러운 존재들」, 「변태성행위를 즐기는 쓰레기」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험구가 이어졌고 심지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전자우편으로 날아들었다.
지난 1월 모 방송국과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국내동성애자 실태조사자료」를 통해 「동성애자의 성행위가 에이즈전파의 가장 큰 원인」, 「동성애자는 무조건 에이즈환자」라고 발표, 많은 동성애자들의 분노를 샀다.
황씨는 『일반인들이 동성애자에 대해 얼마나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동성애자들을 에이즈환자취급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이 일을 계기로 PC통신 동호회 게시판에는 적극적인 동성애자 인권운동을 전개하자는 글들이 올라왔다.
PC통신 동호회와 여성동성애자 단체 「끼리끼리」, 남성동성애자 단체 「친구사이」, 서울대 동성애자 인권운동모임인 「마음003」 등 동인협 산하단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 1월23일 시위를 벌였다. 결국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의 사과를 받아냈다.
이들은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PC통신 동호회를 일반인들에게 개방했다.
「또 하나의 사랑」에는 현재 30여명의 일반회원이 활동중이다.
「버디」라는 동성애자 잡지도 창간했다. 동성애자들이 모여 만드는 이 잡지는 동성애자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일반인들에게 올바른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글들이 실려있다.
버디의 표지모델로 나선 황씨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일 뿐』이라며 『동성애자들을 일반인과 다르게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말했다.
『동성애자도 일반인과 똑같아요. 단지 이성대신 동성을 사랑할 뿐이죠. 사랑은 아름다운 겁니다. 어떤 이유로든 비난받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에요』 황씨처럼 PC통신 동호회를 통해 세상밖으로 뛰쳐나온 동성애자들의 당당한 이유이다.<최연진 기자 wolfpack@nuri.net>최연진>
◎동성애잡지 ‘버디’ 표지모델 황의숙씨/“같은처지 사람에 용기주려 공개활동 결심”
황의숙씨는 동성애자이면서도 당당하게 공개활동을 하는 동인협의 대표적 멤버. 하이텔 「또 하나의 사랑」 운영을 맡고 있으며 지난달 창간된 동성애자 잡지인 「버디」의 표지모델로 유명해졌다.
황씨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은 레즈비언이다. 지나가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손끝이라도 닿으면 찌르르 전기가 흐른다.
밤새 인터넷을 뒤지는 것도 미모의 여성사진을 전송받기 위해서다.
황씨가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처음 느낀 것은 중학교 1학년때. 같은 반 친구를 통해 첫사랑을 경험했다. 매일 친구를 집까지 바래다 주며 애틋한 연애편지도 띄워보고 시도 써봤지만 친구의 냉담한 반응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여자는 친구일뿐 사랑으로 다가서기 힘들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그 일을 계기로 고 1때 성전환 수술까지 생각했다. 이유는 한가지, 『남자로 살면 여자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황씨는 96년 대학시절 PC통신을 시작했다. 당시 목숨보다 더 사랑한 여자친구가 유학을 떠나면서 외톨이가 된 그는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친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보다못한 게이친구의 소개로 「또 하나의 사랑」을 알게 됐다.
그 곳에는 황씨가 지금껏 보지 못한 세계가 숨어 있었다. 자신과 똑같은 동성애자들이 살고 있었던 것. 그는 끼니도 거른 채 하루 10시간이 넘게 PC통신을 했다. 급기야 97년 「또 하나의 사랑」의 운영진을 맡으면서 동인협 활동에 가담, 동성애자 인권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황씨는 『부모님이 이 사실을 안다면 틀림없이 졸도하실 것』이라며 마냥 착잡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활동을 시작한 것은 이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대외활동을 한다는 의미로 통하는 「커밍아웃」이 동성애 인권운동의 시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이텔 ‘또 하나의 사랑’ 대표 김현구씨/“게시판 글 모아 일반인 오해 풀 교재만들 계획”
PC통신 하이텔 동성애자동호회 「또하나의 사랑」의 대표운영자 김현구씨.
그는 흔히 「게이」로 불리는 남성동성애자. 김씨는 올해 나이 서른살의 직장인이다. 장가가라는 부모님의 성화가 대단하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여자대신 남자를 사랑해야 하는 운명을 「천형」처럼 타고났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아직 모른다. 같이 피를 나눈 가족이지만 밝히기가 쉽지 않다. 아마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안다면 졸도할 게 뻔하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다.
김씨가 유일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은 사이버공간, 「또 하나의 사랑」뿐. 그곳에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성애자들이 올린 가슴아픈 얘기들이 가득하다. 보통 사람들과의 갈등, 만남, 이별, 짝사랑 등 회원들이 올린 다양한 내용의 글들을 읽노라면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내 얘기인 것 같은 착각과 함께 눈물이 핑 돈다. 동성애자라면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동호회 사람들에겐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 대표운영자라서 대화방 및 정기모임에 꼬박꼬박 참여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공개활동을 하게 됐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신분을 공개해서 잃은 것보다 더 소중한 수많은 회원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불안함이 남아있다.
동성애자란 사실이 알려지면 직장에서 쫓겨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진도 검은 안경을 쓰고 옆모습을 찍었다. 아직도 입장을 드러낸 게이들이 일반인들을 똑바로 마주보기는 힘든 사회이다.
올해는 김씨에게 정신없이 바쁜 한 해가 될 것이다.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모아 학교, 단체에서 교육용 자료로 활용하도록 책을 펴낼 생각이다.
또 동호회가 일반인과 동성애자들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만드는 것도 그에게 주어진 숙제이다.<최연진 기자>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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