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 파문에서 정체가 드러난 「흑금성」 박채서(朴采緖)씨는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불행한 공작원이 됐다. 소속 기관 상관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신분이 노출되고 「이중간첩」이라는 멍에까지 쓰게 됐기 때문이다.정보세계에서는 「기브 앤 테이크(주고 받기)」가 원칙이다. 항상 적과의 피말리는 거래와 수싸움이 수반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적의 의도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도 연출된다. 박씨의 경우처럼, 남북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양다리 걸치기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이 사업 종사자들은 점잖게 말해 대북 로비스트다. 하지만 부분적 이더라도 북한에 이득을 주지 않으면 활동이 불가능하다. 대북 로비스트 중에는 비교적 북한 방문이 자유로운 해외교포, 그중에서도 학계 인사나 사업가가 많다. 중국의 김진경(金鎭慶) 옌볜(延邊)과학기술대총장은 대표적으로 공개된 인물이다. 그는 북한내 김순권(金順權) 박사의 슈퍼옥수수 재배와 김진홍(金鎭洪) 목사의 두레마을 건설 사업을 주선했다.
평양·원산 인근에 과일가공공장을 설립한 바 있는 재미 사업가 김양일씨의 경우, 남북당국간 비밀 접촉의 단골 중계인으로 거론된다. 96년 청와대의 밀가루 북송사건이 좋은 예이다. 미국의 A박사는 북한을 오고가면서 수시로 정부 최고위급 인사를 면담했다. 남북경제교류·협력사업을 추진중인 대부분 사업가들도 엄밀한 의미에서는 로비스트 범주에 들어간다.
이들은 북한당국의 허가를 받기 이전에 우리 당국으로부터 접촉승인을 받아야 하고 방북결과를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사전에 주문이 있을 수 있고 사후에 커넥션이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임무가 노골적 정치색을 띠면 「판」은 살벌해진다. 북한의 차관급 공작책임자는 지난해 대선 무렵 중국 베이징(北京)의 캠핀스키호텔에 장기투숙하며 우리 기업인, 정당 관계자들을 상대로 역정보 유출공작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에 지난해 농업비서 서관희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간부들이 처형, 내지 좌천된 혐의는 남한 정보기관과의 접촉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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