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신문·법조·사형장 등/금기시하고 외면해왔던 권력과 사회이면에 ‘앵글’/성역없는 감시·비판 찬사속 일부선 新선정주의 우려방송의 눈길이 다양해졌다. 그동안 굳이 눈길을 주려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해 왔던 권력과 사회의 이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재벌 법조 신문등 금기로 여겨왔던 분야는 물론 사형장 소년원등 외부와 차단돼 있던 비밀스런 곳까지도 취재대상으로 겨냥하고 있다.
준비되어 있었던 사수는 MBC와 SBS. MBC는 10일 「PD수첩」(연출 정길화 김영호)을 통해 IMF한파로 구조조정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신문업계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1부의 부제는 「위기의 한국신문, 개혁은 오는가?」.
방송이 신문에 대한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특히 단순 보도에 머무르지 않고 다큐멘터리형식의 완성된 프로그램으로 신문의 구석구석을 점검하기는 처음이다. 방송은 국민의 공동재산인 전파를 사용한다는 이유등으로 신문으로부터 감시와 비판을 받아왔지만 방송의 신문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사실상 없었다. MBC는 24일 권언유착을 주제로 한 「위기의 한국 신문… 2부」를 내보낸다.
「PD수첩」을 담당하고 있는 윤혁 교양제작국 사회교양팀장은 『매스컴도 상호감시의 기능이 있어야 공동발전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원리에 입각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소재는 재벌이다. 「금력은 곧 권력」으로 인식돼온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재벌을 건드리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았다. 특히 우리 재벌의 족벌화, 왜곡된 소유의식등 첨예한 부분을 다루는 것은 당연히 금기였다. 그러나 MBC 「다큐스페셜」은 12일 「재벌…족벌」이라는 부제로 재벌분석을 시도했다.
『…재벌의 핵심적인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1인총수의 전횡이다. 재벌총수는 거대한 기업군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수십만 종업원 위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한다…』. 거침없는 멘트에서 알 수 있듯 프로그램은 재벌의 아킬레스건을 비교적 과감하게 지적하며 재벌변화의 대안을 모색했다.
15일 방송된 SBS 「문성근의 다큐세상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방송계의 변화한 환경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의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다시 보는 진실강기훈 유서대필사건」(연출 민인식)을 부제로 한 이 프로그램은 91년 김기설씨의 자살과 그의 유서를 대필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돼 3년간 복역한 강기훈씨의 사건을 다뤘다. 유죄판결에 근거를 제공했던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김형영씨가 돈을 받고 토지사기단에 허위감정서를 내줘 지난 달 구속된 사건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원래 92년 100% 완성된 상태에서 방송이 취소된 아픈 경험이 있다(당시 연출 신언훈·현 교양3CP).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대법원 쪽에서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자 SBS는 내부 협의를 거쳐 방송을 취소했다. 이번 방송에는 그 때의 촬영분이 70% 이상 들어갔다. 자료실에서 잠자던 프로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신언훈 PD는 『정권이 바뀌면서 방송환경도 바뀌었다는 점을 실감한다. 나로서는 그 프로그램이 사생아였던 셈인데 뒤늦게라도 전파를 타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 밖에 사형수들의 일상을 그려 죽음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불러 일으켰던 SBS 「추적! 사건과 사람들」(연출 최창현, 9일 방송), 여자소년원의 내부를 2개월간 취재한 MBC 「다큐스페셜」(연출 이강국, 19일 방송)등도 소재선택의 과감성을 높이 사줄만한 작품으로 꼽힌다.
방송의 환경이 자유로워지고 소재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당연히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걱정스런 목소리도 없지 않다. 자극적 소재가 갖기 쉬운 선정주의다. 재미와 시청률을 위해 이러한 소재가 잘못 이용될 때 방송은 오히려 입지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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