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개 돌계단을 지나 눈썹바위에 오르면 해수관음의 경지가…낙가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해수관음(관세음보살)의 자비로움만큼이나 포근하게 느껴진다. 수평선은 까마득하게 물러나 있고 파도도 잠든 듯 고요하다. 해수관음은 여기 낙가산 보문사에서 삶에 지친 중생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다. 불교에서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신음이 들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그 고통에서 구원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같은 부처이다.
인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 김포와 강화를 잇는 왕복 4차선의 새 강화대교가 최근 개통돼 평일이면 1시간30분거리다. 주말에도 아침 일찍 떠나 오후 4시 전에 섬을 나서면 하루나들이로 더 할 나위없이 좋다. 조금 여유를 갖고 강화도까지 둘러보고 오후 8시께 서울로 향해도 괜찮다.
강화도 외포리에서 카페리를 타고 5분이면 석모도 석포리에 닿는다. 자동차도 실어나르는 제법 큰 배가 20, 30분간격으로 운행한다. 왕복요금은 어른 1,200원, 어린이 600원이며 자가용은 1만4,000원을 내야 한다. 큰 섬 강화도에서는 실감할 수 없었던 바다내음이 코에 와 닿는다. 짧은 뱃길 내내 뱃전을 맴도는 하얀 새도 영낙없는 갈매기들이다.
전통사찰 보문사는 석포리에서 회주도로를 타고 차로 15분거리. 도로 양쪽으로 제법 넓은 들이 펼쳐진다. 물이 좋고 땅이 기름져 쌀만은 자급자족을 한다. 석모도에서 가장 큰 포구인 어류정의 간이횟집도 밴댕이와 꽃게철인 5월까지는 문을 열지 않는다.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의 뒷모습이 한가해보인다.
석모도의 봄은 보문사 산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된다. 마을 여인네들이 펼쳐놓은 좌판은 달래 냉이 더덕같은 봄나물과 산채로 가득하다. 조금씩 새 생명을 틔우고 있는 나무들. 아담한 숲이 조용히 기지개를 켜는 듯하다. 30도 가까운 가파른 길을 「관세음보살」독경소리와 찰랑찰랑대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걸어 오르다 보면 마치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 들어온 듯한 착각마저 든다.
보문사는 그리 크지 않다. 신라 선덕여왕 4년인 635년 회정대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없다. 지금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보문사는 그리 큰 사찰은 아니지만 매년 50만명 이상이 찾는다. 눈썹바위 밑의 마애불과 해수관음 때문이다. 물론 무료 점심공양도 한 몫 거든다. 점심시간에 맞춰 가면 누구에게나 막 지은 밥을 퍼준다. 된장국과 두 세가지 나물반찬 뿐이지만 맛 좋기로 소문나 있다. 무쇠솥에 지은 밥과 10가지 반찬이 따라나오는 강화읍내 중앙시장의 우리옥(0329342427) 한정식과 강화도의 명물인 밴댕이회 못지 않다. 외포리의 돈대횟집(0329322833)등 횟집은 선착장 부근에 몰려 있다. 보문사주지 원종 스님은 『IMF 이후 평일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일러준다.
눈썹바위까지 돌계단이 놓인 것은 70년대 일이다. 모두 420 계단. 밑에서 올려다보면 끝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오르나 싶다. 이내 숨이 턱 밑에 차오른다. 어쩐 일인지 한걸음 한걸음 옮겨놓을 때마다 힘들고 우울했던 지난 겨울이 떠오른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IMF와 그 이후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벌어졌던 많은 일들.
어떻게 지나왔나 하다보니 어느새 머리 바로 위에 눈썹바위가 보인다. 낙가산 중턱에 길쭉하게 삐져나와 있는 모습이 눈썹 그대로다. 그 바로 아래 비스듬한 바위에 인자한 해수관음이 흘러내릴 듯 새겨져 있다. 낙산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전통사찰에 세워진 3대 해수관음이다. 마애불은 바다를 굽어보고 있다. 발 아래 절집과 산이 있고 그 아래로 서해가 펼쳐진다. 짙푸른 바다 위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날 좋은 날 이 곳에서 보는 서해의 낙조는 강화 제1경으로 꼽힐 만큼 절경이다. 큰 숨을 들이쉬니 막혀 있던 가슴이 확 뚫린다. 저 바다처럼 넓고 담담하게 살 수 있다면…. 내려오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420 계단도 잠깐이다.<석모도=김지영 기자>석모도=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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