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수 국가민족사무원 주임/조선족 100년 사상 첫 국무원 각료중국의 조선족 100년 역사상 국무원 각료가 첫 배출됐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 공작부(통전부) 부부장 리더주(이덕수·55)가 국가민족사무원 주임으로 선출됐다. 이주임은 이날 전인대에서 출석 대의원 2,935명중 2,926표의 찬성을 얻어 39명의 신임 각료중 최고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지금까지 조선족중 최고 지위는 인민해방군 총후근부장과 군사과학원장을 역임하고 제9기 전국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에 선출된 자오난치(조남기·72)상장이었다. 국가민족사무위원회는 국무원 29개 부서중 서열 8위로서 중국 55개 소수 민족의 제반정책과 법규를 관장·집행하는 부서이다.
이주임은 중국 지린(길림)성 옌볜(연변)조선족 자치주 왕칭(왕청)현 출신으로 옌볜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65년 공산당에 입당, 공청당 중앙위원, 지린성 당위부서기 등을 역임하다가 일약 40세때인 83년 옌볜자치주 당위 서기 겸 주장을 지냈다.
85년 지린성 부성장으로 중앙에 진출,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부주임을 역임했고 87년부터 중앙위원에 선출됐다. 92년부터 통전부 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티베트 업무에 종사했다. 조선족 사회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조선족을 많이 도와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족 행사에는 꼭 참석한다.<베이징=송대수 특파원>베이징=송대수>
◎당가선 외교부장/동아시아 외교전담 일본통
탕자쉬안(당가선·60) 신임외교부장은 외교부내에서 동아시아 지역을 전담해 온 아시아 전문가. 베이징(북경)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뒤 72년 중일국교정상화 회담때 통역을 맡은 것을 계기로 외교부와 인연을 맺은 후 외교관 경력 대부분을 일본에서 쌓았다. 주일 중국대사관 2등서기관, 1등서기관, 공사를 역임한 뒤 아주사 부사장(부국장급), 부장조리(차관급)를 거쳐 93년 4월부터 아시아담당 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활동영역을 아시아지역으로 넓혔다.
대미외교 경험이 거의 없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부부장 서열3위인 그가 부장으로 발탁된 것은 미·일 신안보조약(가이드라인) 댜오위다오(조어도·일본명 센카쿠제도)영유권 분쟁 등 대아시아 외교비중이 커진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장쩌민(강택민) 국가주석의 고향인 장쑤(강소)성 출신으로 중국내 실세그룹인 상하이(상해)파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97년초 황장엽(황장엽)씨 망명사건을 매끄럽게 처리해 중국 지도부로부터 외교수완을 인정받았다. 93년과 94년 한국을 두차례 방문했으며 지난해 12월 제네바 4자회담에는 중국측 수석대표로 참석했다.<윤태형 기자>윤태형>
◎온가보 부총리/조자양 계열 제4세대 선두주자
원자바오(온가보·55) 신임부총리는 후진타오(호금도) 국가부주석, 우방궈(오방국) 부총리와 함께 제4세대 선두주자로 꼽히는 인물.
그는 정치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오쯔양(조자양) 전총서기 계열로 44세에 당중앙의 비밀공작을 관장하는 요직인 당중앙판공청 주임으로 발탁됐다.
그는 그러나 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시위진압에 미온적인 태도로 덩샤오핑(등소평)의 눈밖에 났고 이 때문에 한동안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3년뒤 최연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 재기에 성공했고 지난해 15전대에서 정치국원으로 승진했다.
톈진(천진)출신인 그는 베이징(북경)지질대 광산학과를 졸업한 뒤 간쑤(감숙)성 지질국에서 일하다 83년 국무원 지질광산부 부부장, 85년 중앙판공청 부주임을 역임했다. 온화한 성격의 그는 중앙농업영도 소조 부조장, 국무원 과기영도소조 부조장, 중앙재경영도소조 조장을 맡았으며 「당정분리」를 주장해왔다.<윤태형 기자>윤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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