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내기 위한 제네바 4자회담의 2차 본회담 개막일인 16일 오전. 회담장인 국제회의센터(CICG) 별관에 한국과 북한 미국 중국의 대표단이 속속 도착했다.개막예정 시간은 오전 10시. 그러나 본회담은 한 시간이 넘고 두 시간이 넘어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도진 사이에 술렁거림이 일었다. 알려진 정보는 수석대표들간에 예정에 없던 비공식 협의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부. 「본회담은 개막도 못한 채 깨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마저 퍼져나갔다. 일부 기자들은 회담결렬 가능성 등 비관적 전망기사를 전송하기 시작했다.
예정보다 5시간을 넘긴 오후 3시15분. 본회담은 개막됐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취재한 기자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회담지연의 이유는 의제나 일정 등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바로 회담장의 좌석배치 문제였던 것이다.
4개국은 지난 주말 준비회의에서 좌석배치 방식에 합의를 봤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유엔방식을 따라 의장국을 포함해 각 대표단의 국가 알파벳순으로 좌석을 배열키로 한 것이다. 이에따라 1차 회담때와 마찬가지로 한국과 북한이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이 느닷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북한측은 준비회의 당시 합의내용이 불명확했다며 아전인수격 해석을 주장했다. 회의장을 곧 뛰쳐나갈 것 같이 북한이 막무가내로 나오자 한·미·중 3국은 고심 끝에 본회담을 살리기 위해서 양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회담은 결국 북한이 원하는 대로 사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미국이 정면대좌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4자회담을 마치 북·미간 양자협상처럼 북·미 구도로 이끌어나가려는 북한의 의도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좌석배치를 둘러싼 5시간의 입씨름은 한갓 에피소드일 수 있다. 그러나 제네바 4자회담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아직 테이블에 대좌조차 쉽지 않은 첩첩산중이 가로막혀 있다는 점을 이 에피소드는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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