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은행 과감한 정리 필요/단기고통 피하기 위해 장기불황늪 빠질순 없어”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00일이 지났다. 당장에라도 바닥날 것만 같던 외환부족 사태는 겨우 한 고비를 넘겼다.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로부터 210억달러가 들어 왔고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외환사정이 다소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제위기는 이제 그 시작단계에 불과하고,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이번 위기는 복합적 요인에 의해 야기된 것이며 그 뿌리가 깊다는 얘기다. 외화유동성 위기를 극복한다 하더라도 기업위기와 금융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지향한다고 말은 하지만 시장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더구나 국내외 구분이 없어져 버린 시장의 힘은 가히 초능력수준이라 하겠다. 세계적인 거대기업도 소비자가 외면하기 시작하면 하루아침에 망하게 마련이며, 국가경제도 예외가 아니다. 국제투자자가 등을 돌리면 외환위기는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시장은 모든 것을 반영한다. 경제적인 변화는 물론, 경제외적인 측면의 조그만 변화도 놓치지 않는다. 또한 실제로 일어난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기대도 반영된다. 시장, 특히 국제금융시장의 이같은 속성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국내외 상황은 아직도 살얼음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도네시아의 위기가 심화하고, 이웃 일본과 중국의 부실금융문제와 환율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에선 여소야대의 구조적 한계를 안고 출범한 새정부의 개혁의지가 정치권의 분열속에서 실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일전에 만난 외국의 신용평가회사 관계자의 말이다. 『눈에 보이는 경제 실적도 중요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사회적 변화는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구조개혁을 위한 정치지도자의 리더십과 국민의 지지도 같은 것이 신용평가의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인지 연초부터 큰 폭으로 유입되던 외국인 주식투자가 다시 주춤거리고 있으며, 외신에 의하면 한국의 구조조정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한다.
정치적 리더십이 약화하면 경제개혁의지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던 개혁과 구조조정의 부르짖음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대표적 부실기업과 부실은행은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그냥 연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협조융자니 초고금리 금융상품이니 하면서 시중의 자금을 블랙홀마냥 끌어가고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건실한 기업과 은행의 자금줄이 막히고, 시중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엄청난 자원배분의 왜곡이다.
부실기업과 부실은행이 더이상 구제되어선 안된다. 파산되거나 매각되게 하는 수 밖에 없다. 국민경제 관점에선 그냥 파산되는 것보다는 인수·합병(M&A)되는 것이 구조조정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인적·물적 생산자원이 상당부분 재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한테 헐값으로 팔더라도 너무 아까워할 것 없다. 그렇게 조달된 자금으로 우리 경제의 재건을 도모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대기업 도산에 따르는 연쇄도산과 실업문제는 실로 우려된다. 그러나 그게 무서워서 부실기업이 정리되지 못할 경우 우리 경제가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해야 한다. 단기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장기불황으로 빠져들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나아가서 기업도산이 많아진다고 해서 경제기반이 깡그리 붕괴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도 있다. 이는 대만경제의 성공적 경험에서 배워야할 교훈이다. 오늘날 대만의 단단한 경제체질은 수많은 기업의 도산과 창업이 가능했던 경제적 풍토에 그 비결이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부원장>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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