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인가에만 6개월·통관서류 수백가지지난해말 지방의 한 외국인 전용공단에 반도체 소재 생산공장을 세운 미국의 M사는 공장 인허가를 받는데만 6개월이상을 허비했다. 방대한 인허가 서류를 간신히 준비해 제출했으나 『이런 저런 서류가 미비하다』 『양식이 잘못됐다』는 등의 이유로 몇 차례나 서류보완을 반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단지조성기간도 공단측은 당초 6개월정도라고 설명했으나 단지주변에서 문화재가 출토되는 바람에 6개월이상이 늦춰졌다.
M사가 당한 황당한 체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소방안전시설은 자체적으로 갖추면 된다는 행정 담당자의 말에 따라 다른 외국공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장내부에 스프링클러를 설치, 완벽한 소방시설을 갖췄다. 그러나 뒤늦게 행정기관은 소방법규가 바뀌었다며 옥외용 물탱크를 설치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왜 처음부터 이를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항의해 보았지만 『담당자가 바뀌어 사정을 잘 모른 것 같다』는 해명이 고작이었다. 할수없이 M사는 2,500만원을 들여 물탱크를 설치하느라 또 1개월이 지체되고 말았다. M사 관계자는 『외국인 전용공단의 사정이 이정도라면 더이상 말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15만평에 달하는 이 공단에 입주한 외국업체는 4개뿐이다.
한국이 외국으로부터 「규제의 왕국」이라는 악명을 얻은지는 이미 오래됐다. 한국에 투자를 결심했다가도 인허가단계부터 시작되는 끝도없는 규제의 장애물과 그후에도 계속되는 행정당국의 간섭및 지시에 지쳐 중도에 손을 들어버린 외국기업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외제승용차 수입절차를 살펴보자. 업체들은 먼저 형식승인을 받기 위해 건설교통부에 각 항목별 172가지의 제원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또 소음및 배기적합승인을 위해 환경부에도 수십가지의 서류를 내야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성능 검사소에서 이미 제출한 172가지의 서류 항목별로 차체를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는 「빨래절차」를 거친다. 여기에 통관서류를 모두 합치면 제출서류가 10㎝ 두께의 바인더 한 권 규모. 싱가포르의 경우 수입차 통관을 위해 필요한 서류는 고작 13가지, 홍콩은 11가지에 불과하다.
제품의 성능과 안전성을 담보하기위한 행정확인절차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수입을 막기위한 규제라면 결과는 시장보호가 아니라, 국가적 이미지 실추와 통상압력뿐이다.
행정담당자의 전문성이 결여되고 수시로 얼굴이 바뀌는 것도 외국기업들이 고개를 내젓는 대목이다. 지난달 국내 투자사업 계획을 전면 백지화한 다우코닝사는 투자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담당자가 3번이나 바뀌었다고 푸념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12일 미국 뉴욕대에서 코리아소사이티(회장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 주최로 열린 한 세미나에서는 『한국에서 기업을 하는 것은 총탄이 쏟아지는 지뢰밭에서 전쟁을 하는 것과 같다』는 등 행정규제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다. 실타래처럼 얽힌 규제를 푸는 것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손쉬운 수단이다. 외국기업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우리 기업을 위해서라도 더욱 시급하다.<장학만 기자>장학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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