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벤처기업만 골라 단기투자 이익 뽑기 바빠한국의 벤처캐피털(모험자본)은 안전한 벤처기업만 찾아 단기투자를 하는 「안전자본」에 가깝다. 실패위험을 무릅쓰고 막 싹트는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진취성은 어디에도 없다. 위험도가 높은 창업 지원이나 초기투자는 오히려 금기사항. 실적이나 명성이 쌓이지 않으면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는 게 보통이다. 이미 성장한 유망 벤처기업들을 상대로 투자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
벤처기업 K사의 L사장. 『창업단계의 기업이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사업계획서를 내도 검토 한번 못받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일쑤다. 창업은 대부분 자기자금으로 해야 하고 실적과 명성이 올라간 후에야 투자와 지원이 들어온다. 결국 기반이 닦인 벤처만 지원을 받는다』
또 다른 벤처기업 K사장도 『50여개에 달하는 창업투자회사들중 벤처마인드를 가진 곳은 10여곳도 안된다. 나머지는 코스닥시장에서 벤처기업에 돈을 집어넣고 시세차익만 챙겨 빠져나가는 투기자금이다』라고 꼬집었다.
벤처캐피털이 초기투자를 꺼리는 것은 실패할 위험이 높은 데다 투자자금 회수기간이 너무 길기 때문. 벤처캐피털의 한 관계자.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보유주식이 상장돼야 하는데 여기에 걸리는 시간이 미국의 2배인 10년을 넘어요. 주가가 10배 뛰어도 할인율과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실제 수익률은 30%대에 그치죠. 코스닥시장도 걸음마 단계라 투자가 더 힘들어요』
초기 투자에는 극히 인색한 반면 잘나가는 벤처기업에 대해서는 거액의 프리미엄까지 지불하며 투자를 한다. 상장전 액면가가 5,000원인 주식을 10배인 5만원에 사들여 지분참여를 한다. 『상장후 유·무상 증자를 받으면 10배를 줘도 남는 장사』라는게 벤처금융사의 한 직원의 귀띔. 말그대로 「돈놓고 돈먹기」가 돼버린 것이다.
대출업무가 가능한 신기술사업금융사들은 위험한 벤처투자는 제쳐놓고 아예 대출업에 전력하고 있다. 자금의 90%이상이 투자가 아닌 대출에 쏠려 벤처금융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대출업무가 금지된 창업투자회사들도 약정투자나 전환사채 등 편법적인 투자방식을 쓴다. 심지어 투자시 갖가지 방식으로 담보를 요구, 벤처기업을 울리기도 한다.
벤처금융사들도 나름의 사정은 있다. 국내 벤처기업의 토대가 워낙 약한 데다 투자실패율이 커 보수적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것. 벤처캐피털의 한 투자심사책임자. 『유망해 보여 투자했는데 한달만에 망하더군요. 졸지에 수억원을 날렸죠. 10번 투자해 1번 성공하면 다행입니다. 투자가 성공해도 상장전까지는 자금회수가 안됩니다. 손해를 볼 게 뻔한데 어떻게 투자를 하겠어요?』
투자여부를 판단하는 심사역 대부분이 기술에 대해 문외한이라 것도 심각한 문제. 또 보고·결재 시스템의 경직성때문에 탄력적 운영도 불가능하다. K벤처금융사의 J심사역은 『기술 평가와 조언을 해주는 믿을만한 공인기관이 있다면 투자심사가 수월할 것』이라며 『벤처기업과 금융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시장여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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