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를 찾는 한국인들이 낯선 카이로공항에서 맨 처음 만나는 것은 엑셀영업용 택시다. 엑셀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향하다 보면 또 맨 처음 지나치는 곳이 「10월전쟁기념관」이다.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공항부근의 이 기념관을 꼭 지나가게 된다. 남한산 영업용 택시를 타고 북한산 전쟁기념관을 지나쳐야 할 정도로 이집트는 남북한 외교의 각축장이었다.90년대중반 진출한 현대자동차의 현지조립공장에서 양산하는 엑셀승용차는 지금 카이로시내 영업용택시의 대명사가 됐다. 반면 10월전쟁기념관은 80년대초 북한이 건립한 전쟁기념조형물이다. 중동전쟁사는 아랍권의 패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73년 10월전쟁만큼은 아랍인들에게 자긍심을 드높인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이집트인들은 성전을 승전으로 이끌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김일성이 지어준 이 전쟁기념관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한때 「코리아=북한」으로 잘못 이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작년 한해 한·이집트 교역량은 58억달러다. 북한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이제 「코리아=한국」이다. 특히 장승길 대사 일가족 미국망명은 북한의 위상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북한이 최근 해외공관의 약 30%를 감축한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남북한의 불필요한 소모적 경쟁으로 외화난이 더욱 가중됐을 것이다.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약밀수등 북한외교관의 낯 뜨거운 생존비행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늦게나마 올바른 선택을 했다.
새정부도 행개위 결정에 따라 20개 공관 감축방침을 정했다. 만약 냉전적 이유로 존재하는 공관이 있다면 우선적 정리가 마땅하다. 하지만 무역을 안하면 하루도 지탱할 수 없는 우리 입장에서 볼 때 경제적 이해가 걸린 공관들이 이 방침에 따라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외교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런 하루살이식이 돼서는 안된다. 우리처럼 해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탄력적 공관운영이 불가피하다.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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